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존 버닝햄 글 그림 / 박상희 옮김

by Glenn

아이는 눈을 감고 기차는 출발한다. 양면의 페이지는 펼칠 때마다 빛과 어둠을 번갈아 배치시킨다. 소년과 개는 머쓱한 표정의 코끼리를 발견한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코끼리는 빈다. 제발, 태워줘. 인간들이 내 상아를 자르고 우릴 다 죽이려고 해. 소년과 개에겐 이를 뿌리칠 적당한 답변이 없다. 셋은 물놀이를 즐긴다. 그러나 기차에 오르려는 바다표범을 발견한다. 야, (중략) 내려! 바다표범의 사연 역시 코끼리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인간들이 우릴 다 죽일 거라는. 넷은 연날리기를 한다. 그런데 두루미가 기차에... 야, (중략) 내려! 그러니까 인간들이 우리를... 다섯은 함께 우산을 쓰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호랑이가 기차에... 야, (중략) 내려! 그러니까 인간들이 우리를... 여섯은 같이 눈싸움을 한다. 그리고 북극곰이 기차에... 야, (중략) 내려! 그러니까 인간들이 우리를... 북극곰까지 태운 기차는 폭설에 멈추고 일곱은 내려 눈을 치운다. 그리고 돌아간다. 지옥의 화염 정중앙을 뚫고 지나가는 폭주기관차처럼.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눈을 뜬다. 도로시와 놀다 보면 장난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아이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손에 쥔 장난감을 가지고 이리저리 오갈 동기부여와 앞으로 끌고 나갈 동력이 되어줄, 그리고 지속 가능할만한 재미를 지닌 이야기. TV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 등을 토대로 만든 장난감은 좀 더 쉬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일상의 공간 안에 놓여 화자가 성우가 아닌 미취학 아동으로 바뀌면 새로운 관점, 방향, 맥락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전날 밤새워 준비하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장난감으로 어떤 시간대에 어떤 방식으로 놀자고 제안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극도로 즉흥적이면서도 미취학(또는 초등 저학년) 아동의 지식과 정보, 흥미에 적확하게 들어맞아야 한다. 고객은 쉽게 실망하는 편이고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시간의 틈이 생기는 걸 원치 않으신다. 이를 테면 레고 닌자고 장난감으로 놀 경우 캐릭터 관계도와 새로운 악당의 출현, 새로운 도시와 사건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공연자가 스스로 몰입하고 빠져들어 재미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면 아이가 운전하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된다. 다시 스토리텔러의 지위를 부여받고 다음 기회에도 기꺼이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