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빗 콜 글 그림 / 노은정 옮김
공주는 괴물들과 살았다. 돈 많고 예뻐서 왕자들이 줄 섰지만 결혼엔 관심 없었다. 왕비가 채근했고 공주는 조건을 달았다.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고. 초대형 민달팽이를 설득하고 초대형 괴물들을 살찌우고 공주가 지쳐 기절할 때까지 춤을 추고 오토바이의 사나운 성능을 견디고 탑을 기어 올라가고 살아 움직이는 나무들을 땔감으로 만들고 왕비의 백화점 카트 신세가 되고 연못 괴물이 삼킨 반지를 되찾아오면 합격이었다. 합격자는 없었다. 마지막 지원자만 빼고. 마지막 지원자는 불가능한 미션을 모두 통과한다. 마치 그는 공주가 아닌 공주의 테스트에 더 목숨 건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공주 역시 지원자보다 지원자의 합격 여부에 더 관심이 쏠리긴 했다.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든 시험은 끝났고 공주는 최후 합격자와 결혼을 해야 했다. 최후의 합격자에겐 인생이 쉬웠다. 공주의 테스트는 여기에 확신을 더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제 뽀뽀만 하면 된다. 공주는 주저하지 않는다. 뽀뽀만 하면 공주의 모든 소유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최후의 지원자는 상상했을까. 상상이 무엇이었든 뽀뽀는 끝나고 최후의 합격자의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거대한 괴물이 된다. 아니? 최후의 지원자는 떠난다. 공주의 행복한 삶은 계속된다. 도로시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놓친 부분이 있었다. 괴물이 된 도전자는 떠나고 거기가 끝인가 싶었다. 다시 읽었을 때 이마를 쳤다. 이야기 첫 장부터 공주와 같이 살던 괴물들. 혹시 이 괴물들은 모두 공주의 뽀뽀를 받은 자들 아니었을까. 뽀뽀 이후 괴물로 변한 자신의 스펙터클한 외형에는 상관없이 그저 공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한의 사랑과 기쁨, 만족을 느낀다는 걸까. 인간이든 괴물이든 매일 가까이에서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자들을 공주는 선택한 걸까. 어느 뱀파이어를 너무 사랑해서 한평생 곁에 있어주고 (외부에서 수급한) 양질의 피를 계속 공급하려 했던 영화 렛미인처럼? 공주의 뽀뽀를 받은 자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공주와 함께 티비를 보거나 같이 노는 괴물들의 일부가 되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공주가 원한 건 친구지만 왕자가 원한 건 공주의 미모와 재력이라 거래가 성사된 그림을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내려놔야만 가능할 텐데. 절레절레. 공주는 남자가 필요 없었다. 지원자들은 공주라는 인간을 원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