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 누가 우릴 위해 죽어주지?

레오스 카락스 감독. 아네트

by 백승권

아네트에서 가장 기이한 부분은 아네트다. 아네트는 나무로 만든 관절 인형이다.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안(마리옹 꼬띠아르)의 딸이다. 헨리와 안을 비롯한 영화 속 모두는 아네트를 의심할 여지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하지만 영화 바깥 모두의 눈에는 나무 인형이다. 헨리가 안을 죽인 후 안은 헨리를 저주하며 아네트의 노래가 되어 헨리를 괴롭히기로 한다. 헨리와 안 두 아티스트는 서로를 마주 보며 수많은 카메라와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사랑을 표현했지만 결혼은 안의 죽음과 함께 파멸하고 헨리와 아네트는 남는다. 스탠딩 코미디를 관둔 헨리는 아네트에게서 오페라 가수였던 안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친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나 같은) 관객의 심정은 더 혼란스럽다. 아네트는 남성 범죄자의 표정과 목소리를 표현하던 처키를 연상시킨다. 억울하게 죽은 엄마의 목소리가 아기에게 깃든 것도 심난한데 그 아이가 사람이 아니라 나무 인형이라니, 헨리에겐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보였다. 아동학대라는 우려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안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아네트를 데리고 전 세계 콘서트 투어를 강행한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였던 안을 그리던 팬들은 아네트의 등장에 경악과 경탄을 동시에 쏟아낸다. 그리고 투어 중 헨리는 과거에 안을 사랑했다는 지휘자를 살해한다. 아네트는 마지막 콘서트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거대한 경기장 창공을 날아다니는 드론으로 옮겨진 나무 관절 인형 아네트의 어렵게 떼어낸 입술은 전 세계인이 보는 가운데 살인범의 정체를 밝힌다. 안의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아네트는 사랑 없는 결혼의 결과가 어떻게 재앙이 되는지 보여준다. 나무 관절 인형 아네트는 시종일관 어색한 표정과 삐걱거리는 관절로 비인간적인 면을 드러낸다. 어떤 인간 아이도 저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지 않는다. 아네트는 거의 모든 장면을 안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고 충실히 이행한다. 아네트가 인간이 되는 순간은 헨리가 죗값을 치르고 있는 면회장 안이었다. 엄마가 죽고 아빠가 수감되고 나서야 나무 인형 아네트는 인간 소녀 아네트가 된다. 사랑을 거부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 헨리의 죄가 밝혀졌을 때 대중들이 비난한 점은 비인간적인 살인과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오페라 무대 위에서 매번 죽는 엔딩을 했었던 배우 안을 사라지게 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왜 우릴 대신해 죽을 사람을 네가 뭔데 없애버렸냐고 성난 군중들은 헨리를 맹비난한다. 결국 자기 삶의 일부 역할을 훼손한 점에 대한 책임을 맹렬히 묻는다. 헨리의 살인 동기 중 하나도 아내 안에 비해 초라해진 자신의 사회적 지위였다. 전설적인 배우 안에 비해 호불호가 갈리는 헨리의 스탠딩 코미디는 늘 위태로웠다. 헨리는 생의 모든 무대 위에서 자신이 중심이어야 했고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자도 자신이어야 했다. 아네트는 책임과 헌신의 대상이 아닌 안과 헨리의 도구에 불과했다. 둘이 아네트에게 부모다운 애정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 짐승처럼 사랑하다가 생긴 태아를 낳고 의무적으로 돌보는 것처럼 보였다. 아네트는 자신을 도구화하는 어른들이 사라지고 나서 비로소 보통의 인간이 된다. 힘 있는 눈동자로 대상을 응시하고 의견을 담은 목소리로 강하게 어필한다. 영화는 뮤지컬 형식으로 모든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런 시도는 실험적이며 인상적이었지만) 수용자 입장에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예술은 인간을 외롭게 만들고 뉴스는 예술가를 스토킹 하며 대중은 예술가를 배신하고 부모는 아이를 착취하며 아이는 어른을 고발한다. 아네트는 이제 온전히 혼자다. 아네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이제부터다.



*글 제목은 영화 대사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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