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병원에 갔다. 대기시간이 길었다. 수납 담당 간호사가 세 번 내 이름을 불렀다. 그중 두 번은 잘 못 부른 거였다. 목이 좀 부었다. 이런 증상으로 병원 찾은 것도 수년 만이다. 조금 불편할 뿐 심하진 않았다. 열도 없고. 약 5일 치를 지어왔다. 항생제는 3일 치였다. 없이 먹어보고 심해지면 항생제도 먹을 것. 좀 심해져서 월요일부터 항생제도 먹었다. 소화기능이 정지하고 장은 고장 났다. 화장실에 여러 번 가고 기분이 언짢았다. 약을 스스로 조정하는 일은 잘 안 하는데, 이번엔 항생제를 제외해 보았다. 버티다가 도착한 화요일 아침과 점심이었다. 콧물이 바다처럼 나왔다. 그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바다에서 요원들이 막 토하던 그 물처럼. 내 코에서 점도가 약한 투명한 액체가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대체 이게.
화요일마다 4시에 회의가 있다. 버틸 수 있으려나. 아니 마스크를 썼지만 콧물은 콧구멍 이하를 뒤덮고 마스크를 적시고 있었다. 아니 대체 이게.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더 큰 문제는 마스크 속에 입술도 잠겨가고 있었다. 입술 위로 콧물이 뒤덮여 흐르고 마스크를 적시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더 두었다간 목을 뒤덮고 명치까지 적실 셈이었다. 상체를 뒤로 돌려 잠시 마스크를 벗고 휴지로 얼굴을 훔쳤다. 진짜 훔쳐서 코를 어디에 잠시 버리고 이따 찾아가고 싶었다. 그럴 수 없으니까. 다시 마스크를 쓰면 콧물이 범람하고 있었다. 모세가 지팡이를 꽃으면 거대한 파도 장벽 두 개를 만들며 갈라질 거 같았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니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들이마셔도 되잖아. 감기 걸리는 거 원투데이도 아니고. 안 해봤을까. 소용없었다. 점도 약한 투명한 액체는 뇌의 명령에 제어되지 않았다. 마스크를 서너 번 벗고 서너 번 휴지로 얼굴을 훔치자 회의가 끝났다. 화장실에 들러 정리하고 퇴근길에 나섰다.
몸속 깊은 곳에서 사이렌을 켜며 부르짖었나. 사옥 지하 이비인후과로 몸이 끌려갔다. 신들린 듯 토로했다. 이런 적 처음인데 항생제가 너무 속이 아파서 두 번 안 먹었더니 콧물이 폭발해서 일상이 마비될 지경이니 살려주세요. 의사는 경청했고 섬세하게 처방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바뀐 약을 세 번 정도 먹었는데 수로는 거의 차단한 상태다. 하지만 어제 퇴근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끔찍하고 참담하여 이 글을 쓰는 거다. 병원을 나와 지하로 향했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탄 지하철은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마스크 내부가 침수되고 있었다. 아 어쩌지. 평소와 다른 몸과 맘인데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엉키니 안구가 흐려지고 슬픔과 고통에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호흡 때문에 마스크 안에 입을 약간 벌리고 있어야 했고 입술과 입 주변 턱이 모두 젖어 있었다. 기차 화물칸에 사람들을 미친 듯이 욱여넣어 태운 후 모두가 그 안에서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는 나치의 만행에 대한 기록이 떠올랐다. 생존자는 사람들이 달리는 어둠 속에서 죽어가며 서로의 오물이 묻었다고 책에 묘사했다. 시대와 세계와 상황은 달랐지만 내 기억은 이 기록을 떠올렸다. 다른 이미지는 없었다. 마스크가 벗겨져 나와 모두의 옷과 얼굴이 젖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지럽고 괴로웠다. 주머니엔 한 줌의 휴지가 구겨져 있었다.
환승을 위해 내렸고 계단 통로의 만인의 시야에서 최대한 가려진 곳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정리했다. 먼발치 지나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다들 집 생각하느라 바쁘고 타인의 마스크 내부 사정 아무 신경 안 쓸지 모르지만 난 얼굴 닦느라 바쁘고 주변 신경 쓰느라 바쁘고 부끄러워서 바빴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마스크 안의 액체가 검정 상의에 한줄기 흘렀다. 급하게 닦았지만 수치심은 닦이지 않았다. 검정이라 다행이다. 무명의 사람들이 왜 저 사람은 마스크 안에서 나온 액체가 턱선과 목을 타고 흘러서 상의를 한줄기 적시지? 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 같지만 어제 당시에는 복잡하게 부끄러웠다. 화장실에 들러 정리하고 편의점에 들러 휴대용 티슈를 샀다. SRT로 환승한 후에는 최대한 점잖게 닦으려고 노력했다. 통화하는 분이 너무 가까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등을 돌려 얼굴을 정리해야 했고 아 죄송해요 제 마스크 속에서 폭포가 범람하고 있어서 수해복구 중이라 이런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하네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지하철 안에서의 혼돈이 상흔으로 남아있었다. 아니 항생제 두 알 건너뛰었다고 이래도 되는 건가.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말했다. 도로시도 그랬어. 아내가 답했다.불쌍한 도로시, 그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밥을 먹고 새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졌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전신에 몸살이 좀 돋아나고 있지만 마스크 안은 평화롭다. 어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