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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26. 2022

하얼빈, 김훈의 안중근에 대하여

김훈 소설. 하얼빈

안중근은 뒤늦게 절하면서 통곡했다. 안태훈의 죽음에서 안중근은 친숙했던 한 세상이 끝났으며, 적의에 찬 시간 앞에 홀로 서 있음을 느꼈다.


아름다운 솜씨다. 짐승을 쏘기에는 아깝구나.


사람들은 총 맞아 죽고 베어져 죽고 매맞아 죽고 얼어죽고 굶어죽고 앞선 자들의 주검 위에 포개져서 죽었다. 시체들의 흩어진 살점과 터진 창자까지 빛 속에서 환히 보였다.


그 사내는 땅에 결박되어 있으면서도 땅 위에 설 자리가 없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몸속의 먼 곳에서 흐린 구름처럼 밀려다니던 것이 선명한 모습을 갖추고 눈앞으로 다가왔다.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


김성백은 장례 비용이 없어 죽은 조선인들의 주검을 거두어서 묻었고, 허술하게 묻어서 개가 파헤친 무덤들에 흙을 덮어주었다.


평온해진 내 몸을 총알에 실어서 이토의 몸 속으로 박아넣자......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김훈의 글이 글이라면 나의 글은 글이 아니다. 김훈의 글이 글이 아니더라도 (그의 글을 말하는 같은 문장에서) 나의 글은 글이라   없다. 김훈의 글에서 헤아릴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배운 것들을 제대로 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여태껏 글을 써가며 쌀과 옷과 아이 장난감을 사는 돈을 번다는 점에서 이보다 뚜렷한 증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김훈의 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익혔다. 냉혹하고 삼엄한 시대와 물리적 추위 안에서 발언권 없는 가엾은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조선이 그랬고 한국으로 시대와 이름이 바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우고 가난한 자들은  유리한 조건에서 태어난 자들보다 비참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지워졌다. 안중근은 지금껏 김훈의 글에 등장한 인물  자신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한 인물이라 남다르다. 김훈이 소설의 형태 안에서 그려냈던 수많은 인물  목표를 이토록 정확하고 또렷하게 이뤄낸 자가 기억나지 않는다. 대부분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맡겨진 지위 안에서 흔들리고 갈등하다가 외부의 힘에 의해 쓰러진 자들이었다. 안중근은 조선의 역사와   없는 실존인물이고 이토 암살은 세계 역사가 안중근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가장 명징한 사실이자 사건이다. 소설 하얼빈은  사건을 중심으로 안중근이 이토에게 향하고 암살  사형까지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역사 기록에서 당시의 분위기와 움직임들을 옮겨 김훈의 의지로 다시 적었다. 실제 사건이 아니라면  청년의 환상 기록으로 여겨질 만큼 소설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에게만 들리도록 의지와 생각을 표현한다. 김훈의 글은  실존인물을 연민과 역사적 흐름 안에 가두지 않고 국가적 비극을 조장한 적장을 없애려는 시리고 강렬한 의지를 지니고 홀로 칠흑을 헤치고 팔을 뻗어 총을 격발하는 독립체로 다룬다. 타들어가는 심지의 가장 끝부분에  이토는 악마이자 괴물인가. 안중근이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가족과 자신마저 사소한 존재로 만드는 인간이라면 이토는 모든 세부를 치밀하게 다루고 대응하며 장악하려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다만 이토는 안중근의 존재를 몰랐을 뿐이다. 조선인은 통제의 대상이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토에게 두려움의 방향은 조선에서 일본을 향한 것이어야 했다. 결국 이토는 죽는 순간까지 안중근의 존재를 몰랐다.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발의 총알을 박았고 재판정에서도  이유를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김훈은 안중근에 대한 외면의 기록과 기록되지 않은 내면의 안중근을 오가며 나아간다. 국적과 지위를 막론하고 주어진 일을 하며 먹고사는 이들에 대한 오랜 애착과 연민을 거의 모든 저서에서 표현했던 김훈은 이번 하얼빈에서도 어김없었다.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군인부터 심문과 재판을 도운 이들까지 일본인일지언정 이들 역시 살기 위해 누군가의 명령 아래 어쩔  없이  자리에 있었던 자들이라는 점을 담담히 기록한다. 모두가 자기 인생에 대해 침묵할만한 사정이 있었고 이런 비루함과 복잡함 속에서 안중근은 어느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자신의 시대정신에 이끌려 임무를 완수하였다. 만약 그가 난세를 평정하기 위한 슈퍼히어로 같은 초월적이고 신화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면 실존인물의 선택과 가치는 지금보다 오인되었을지 모른다. 김훈의 하얼빈을 통해 안중근은 이미지  영웅에서 인간의 외피를 덧입는다. 그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응축된 감정이 비집고 나오려 했던 순간에도 애써 눌렀던 말과 말들은 안중근을 가장 인간적이고도 비범한 자로 전하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한 자는 이를 저해하는 어떤 방해와 변수적 요인에도 휘청이지 않았다. 안중근이 스스로를 가장 도우려 했고 주변인들이 희생과 침묵을 통해 대의에 동참하고 있었다.  하나의 균형만 무너져도 안중근의 계획은 우리가 아는 결과와 달랐을 것이다. 안중근은  거사를 통해 누구의 아들 누구의 남편 누구의  누구의 아버지가 아닌 조선의 국민으로 떳떳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생의 끝을 받아들인다. 김훈은 자신의 펜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안중근의 여백에 활자를 기워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자로써 안중근의 생애를 완성한다. 거의 모든 문장을 영화 시나리오처럼 탐독했다. 남한산성(김훈 원작) 황동혁 감독, 광해의 추창민 감독, 동주의 이준익 감독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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