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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ug 01. 2017

82년생 김지영, 여자라는 하위계급에 대하여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





서프러제트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며 달리는 말 앞으로 뛰어든다. 며칠 후 두개골 골절로 사망한다. 1913년의 일이었다. 10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후예들은 여전히 여성의 인권에 대해 부르짖고 있지만 사망자 역시 늘어가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차 없는 폭력 속에서 신음하고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다. 일상의 흐름을 비틀며 사상자를 내는 간헐적 빈도의 사건사고가 아니다. 매일 매시간 여성들은 죽어가고 있다. 사라지고 있다. 수컷들이 만든 세상 속에서.
김지영도 그중 하나다. 여자 성별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 소녀로 자라나 누군가의 여자 친구,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아내로 살다 갔다.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음에도 인간 김지영의 잔상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부당함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김지영은 매번 시도하지 않는다. 시도의 결과는 긍정적이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김지영은 테러리스트나 혁명가가 아니었고,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였으며 여기서 평범이란 희생을 강요당하고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삶을 기본적인 전제로 깔고 있었다. 김지영은 평범했고 평범한 김지영의 삶은 늘 억울하고 서글펐다.
현실 김지영들의 삶을 반영하듯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반전이 없다. 거스름 없이 무섭게 흘러간다. 여자와 결혼했다면, 대다수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개인적 결단이 아닌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주변적 환경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면 '82년생 김지영'은 거꾸로 살았던 벤자민 버튼의 궤적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며 기록되지 않았다. 현실 그 자체. '82년생 김지영'은 필름 사진과도 같았다. 르포이자 일기였고 지금도 수없이 올라오는 겨우 살아남았음에도 불리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는 김지영들의 호소문이었다.
다른 시대, 다른 국가, 다른 문화권의 82년생 여성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래도 조선시대보다 훨씬 나아진 거 아니냐 같은 개소리도 없다. 수컷들은 모른 척한다. 알려하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성별의 무리들이 설계하고 축조한 세계의 룰에 그림자처럼 편승한다. 진화를 거부한다. 짐승의 본성과 사고에 머무르며 계급화를 조장하고 상대적 상위의 지위라 착각하는, 그 지푸라기 같은 보잘것없는 허울에 한없이 집착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김지영들을 착취한다. 김지영이 가족이든 친구든 짝꿍이든 빼앗고 짓밟고 이기려 안간힘을 쓴다. 세상이 도와준다. 늙은 수컷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상이 김지영들을 하위 계급에 가둬놓는다.
관점은 이기적이다. 관점이 시작한 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뭘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어.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거 따질 겨를이 어딨어.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대강 지내면 편한 거 아닌가. 네가 무슨 페미니즘 협회 본부장이야. 불편해하고 얕잡아 보며 회피한다. 2,30년 시간 동안 주변의 부당함들을 못 이기는 척 뭉개며 팔짱만 끼고 있으면 자연스레 그 무리의 일부가 된다. 작정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된다. 가장 가까운 곳의 아내와 딸과 친구와 동료가 피눈물과 모욕에 떨고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 무지가 핑계가 된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평등할까. 한탄하며 자신들을 탓하지만, 알고 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고 자신도 김지영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 세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김지영들의 삶을 이렇게 만든 남자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은 단순히 현재를 힘겹게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이야기 정도로 보일지 모른다. 그 외의 것을 따지며 자신의 현재를 뒤흔드는 것은 불편하고 귀찮기 짝이 없다. 자신감 채우며 버티기도 힘든 하루하루 속에서 맨날 연약하고 보호받고 '여자 주제에' 나름 자기주장도 하는 것 같은 김지영들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떠들지 않아도 남자는 위 여자는 아래로 유지되는 경우가 편하다. 주어진 대로 살면 되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나. 사회생활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오늘도 김지영들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 남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매시간 떨고 있다.
변화는 없다. 자각과 각성으로 가는 모든 지성의 길목을 차단한 이들에게 더 이상 삶은 나아지지 않고 퇴보만 거듭할 것이다. 과거의 악습을 대대손손 물려받고 습득하며 김지영들이 '성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날카로운 유리 감옥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악녀 버전은 어떨까. 덜렁거리는 자지만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는 수컷들의 세상에 홀연히 나타나 작두로 무차별(마취 없이) 거세하며 심판하는 정의의 사도. 위로와 수긍보다는 독기와 처단으로 무장한 김지영. 느리고 따스한 연대를 넘어 서슬 퍼런 복수극을 꿈꾼다. 깨지 않아 생생하고 너무 신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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