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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05. 2018

딸에 대하여, 화해는 없다

김혜진 작가. 딸에 대하여

안소현 8.11.S.Z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를 찢는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결코 좁혀지지 않을 이해관계. 엄마와 딸. 레즈비언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엄마와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딸의 이야기. 김혜진 소설 <딸에 대하여>는 엄마라는 화자로 딸을 이야기하며 반대로 엄마를 겹겹이 둘러싼다. 점점 엄마는 단순한 사람이 되어 간다. 그렇게 보인다.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엄마는 결코 이해하지 않는다. 시도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대에서 벗어난 유일한 혈육의 선택과 주장에 대한 이해를 사랑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요양원 할머니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딸에 대해서는 막막한 심정 안에서 끝내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의지. 엄마는 선택했다. 딸을 이해하지 않는 엄마가 되기로.


한 명의 개인 안에 들어있는 수 개의 입장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렇게 보이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은 상대에게까지 가닿지 않는다. 분열된 입장 안에 딸의 자리는 없다. 죽어라 키워서 공부시켜 놨더니 근사한 남자(!) 애인이 아니라 여자 애인과 동거를 선언한 딸. 보따리장수(시간 강사)가 되어 남의 해고에 부당함을 주장하는 딸, 기대하지 않은 딸,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던 딸. 하나밖에 없지만 그 하나밖에 없는 경우의 수를 온전히 나와 반대되는 입장에 써버린 딸. 딸이 미운가. 그렇다. 딸의 애인은 더더욱, 차가운 태도를 내려놓지 못하겠다. 딸의 인생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 했던 걸까. 왜, 그러면 안되나. 다른 세대, 다른 사고방식, 다른 열린 태도, 꼰대 같은 부모가 되고 싶지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현재 상황은) 딸의 더 긴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나는 반대한다. 너의 엄마이기에.


딸의 싸움은 버겁다. 애초 여자라는 성별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주류가 될 수 없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동료를 위해 무리를 지어 항거했다. 무참한 폭력을 당했다. 병원에 실려갔고 엄마와 동거인이 달려왔다. 여자, 레즈비언, 시간강사 그리고 딸.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피할 수 있는 삶을 더 많은 이들이 택하지만 딸은 그런 삶을 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가를 치른다. 엄마에겐 딸이 교훈을 얻길 기대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딸은 자신의 선택을 꺾지 않는다. 엄마의 애간장이 녹는다. 엄마 역시 양보하지 못한다. 현실의 삶은 편집된 드라마가 아니니까. 담당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엄마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갈등한다. 싸우고 결론 내리지 못한다. 딸은 그 자리에 있다. 저 먼 곳에서 여자 애인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며. 엄마와 딸, 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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