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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an 27. 2022

마이너 필링스, 내가 지금 씨X 뭐 하는 거지?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내가 지금 씨발 뭐 하는 거지?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으나

그보다 더 원한 것은 안주하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소년을 자신의 실패에 실망한 성인이

몽상을 쏟아낼, 자신을 대리할

그릇쯤으로 보며 시를 쓴다.


아름다움은 자명했으며,

생각과 시간을 멈추게 하는

능력이 있기에 지고의 가치였다.

자신의 실존으로부터 시간이 멈추는 것,

헬렌은 바로 그것을 갈망했다.


"우리는 사귀자는 말에 쉽게 응하고

자존감도 낮기 때문이다.

저급 브랜드를 택함으로써

더 호화스러운 사양을 누리는 것과도 같다.

게다가 아시아 여자는 백인 여자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백인 남자와도

데이트할 의향이 있다."

영진 리 '용비어천가' (풍자극)


"나는 언제나 너희의 들러리였어."


"시인이 다 무슨 소용이야,

으르렁거리는 고양이들 변기통이지,

그래도 우리는 혁명이

가능한 척하면서 창작해야만 해!"


살인은 범죄 통계쯤으로 둔감하게 인식되지만,

그게 강간이라는 단어와 합쳐지면 여성의 육체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딕테


때때로 나는 뉴스 기사에서

범죄 피해자가 아시아인이면

일부러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관하기 싫다. 왜냐하면 분노 속에

방치되기 싫기 때문이다.


나는 보편성을 파괴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우리야말로 지구 상에서 다수이므로,

보편적인 것은 백인성이 아니라

우리의 차단된 상태다.


우리는 이 나라에 늘 있었던 존재다.




마이너 필링스는 트위터로 알게 되었다. 트위터로 알게 된 책 중 가장 빨리 구매와 완독이 이뤄진 책이다. 타임라인에서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가 담긴 캡처이미지를 봤고 바로 온라인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후 결제했다. 에세이에 대한 중립적 입장이 있었고 최근에 산 다른 책들처럼 수주 또는 수달에 걸쳐 읽힐 거라 여겼다. 결과는, 이틀의 출퇴근 시간에 걸쳐 다 읽었다. 더 당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부분 서서 읽었고 기차, 지하철, 환승을 위한 도보 이동 중에 읽었다. 기대어 읽다가 집중력이 흐릿해지면 덮었다. 문장들이 안구 속에 손을 집어넣어 당기고 있었고 그 당김이 약해지면 읽기를 멈췄다. 최대한 날이 선 상태의 정신으로 문장들을 입력하고 싶었다. 최근에 앤드류 솔로몬, 유발 하라리,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책들을 봤거나 보고 있지만 마이너 필링스는 작가의 성별만큼이나 먼 우주에 있었다. 캐시 박 홍의 삶과 환경과 세계는 저들과 그만큼 달랐다. 성별과 인종만큼이나.


이 글에서 마이너 필링스라는 책에 대해서 소개하고 싶지 않다. 마이너 필링스의 리뷰에 할애해야 할 부피와 질량은 마이너 필리스의 본문의 값과 동일하다. 모듈 방식의 에세이라니. 분절된 구성은 본문 전체를 한 권의 산문시처럼 보이게 한다. 캐시 박 홍의 시집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기억을 옮기는 문장의 배열 방식이 기존에 넘긴 다른 에세이들과 다르다. 시인이 쓴 자기 이야길 담은 에세이로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전에 전문적으로 써온 다른 성격의 글들의 성분이 감지된다. 읽으면서 자주 한숨을 쉬어야 했다. 나는 이런 극적인 환경에 놓이지 않아서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건지 아니라면 이만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객관화하거나 주관화하거나 비평적으로 옮기지 못해서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건지 이만큼 자기 파괴적이지 않아서 이만큼 견문의 지평이 넓지 않아서 이만큼 시와 그림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만큼 이렇게 핑계나 궁리하고 있어서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건지 자문과 틀린 답을 계속 중얼거려야 했다. 스타일을 카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작가의 뇌와 손을 닮을 수 없을 테니 태초에 불가능한 바람이었지.


상처를 흉내 낼 수는 없다.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지만 이만큼 지적이고 리드미컬하며 흥미진진하게 읽히기 어려울 것이다. 지성과 스타일, 성장 배경... 무엇보다 내 윗세대와 동시대에 대해 이토록 적나라하게 옮길 자신이 없다. 스스로에게 머뭇거리는 부분 때문에 다른 삶의 배경과 주변 요소를 다루는데도 서툴다. 내 글쓰기의 약한 면과 한계를 더 깊게 파악하지도 못했고 장점의 유무조차 감지할 능력이 있나 싶다. 마이너 필링스는 닮고 싶은 문장들의 총합이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내가 현재 쓰지 못하고 있는 쓸 수 없는 한계들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폭발하는 불꽃쇼이기도 했다. 본문에 나온 딕테(차학경 저)를 읽고 싶다. 자극하고 괴롭히는 에세이를 어서 더 많이.  




*제목은 본문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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