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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독재자 암살은 정당한가

이정재 감독. 헌트

by 백승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오랜 질문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한 명을 구하려고 분대원 전원이 목숨을 잃는다고? 눈앞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국가가 남은 한 명의 죽음을 막기 위해 다른 여러 명의 목숨을 희생시킨다는 게 타당한가. 상징, 가치, 희망... 이런 상황을 설명할 좋은 단어들이 많다. 익숙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실질적인 죽음을 제대로 납득시켜주는지는 의문이다. 개개인에게 부여된 희생의 가치는 다른가. 그렇긴 하다. 이 가치를 따지는 집단이 부여한 역할의 비중을 비교한다면. 역할과 책임의 크기만큼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만큼 희생의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가 와해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그렇다면 결국엔 소속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조직의 성격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어떤 조직이냐에 따라 해당 개인의 가치가 달라진다. 독재자 역시 개인이다. 독재 시스템을 두둔하는 무리들의 우두머리. 독재 시스템이 장악한 조직 안에서 독재자는 중심이자 상징이며 존재의 이유가 된다. 독재자를 제거하면 독재시스템은 일순간 와해된다. 단기간이라도 독재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베드로는 대한민국에 실재한 독재자의 세례명이었다. 베드로가 죽어야 독재시대가 잠시나마 진정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국민들을 정치적 장악 목적으로 죽였다. 죄 없는 다수의 죽음은 돌아올 수 없었고 추가 희생을 막으려면 독재를 막아야 했으며 스스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실행해야 했다. 하지만 독재자의 추종자들로 수뇌부가 꾸려지고 반란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었으며 낌새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였다. 독재자를 죽이는 건 개인이 아닌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거였고 시대를 바꾸는 시도였다. 성공하면 다행이었고 실패하면 독재의 패악은 끝날 수 없었다. 독재자 암살모의는 착한 사람들이 머리를 모여 꾸민 일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살육과 고통을 겪은 자들의 극단적 전략이었다. 국가 전복을 노리는 게 아니라 전복된 국가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였다. 여기에 외부세력이 동시에 가세한다. 북한 수뇌부 내부 역시 뜻은 하나가 아니었다. 협상이냐 무력 제압이냐 의견이 갈리고 있었고 내부 숙청 후 후자로 정해지고 있었다. 북한 독재 세력이 남한 독재 세력을 제거한들 나라꼴이 바뀔 리 없었다. 중장기적인 지옥이 자명한 일이었다. 어떤 군인(정우성)은 독재 시스템의 부역자로 가담해 시키는 대로 시민들을 죽이다가 자신이 한 짓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독재자를 죽여야 했다. 어떤 공무원(이정재)은 독재 시스템의 부역자 역할을 하다가 자신이 추구하는 애국과 독재자가 추구하는 애국이 너무 다르다는 걸 알고 총구의 방향을 바꾼다. 군인은 독재자를 죽이는 게 삶의 목적이었고 공무원은 독재자가 죽는 게 아니라 남은 다수의 국민들이 더 안전한 게 목적이었다. 목적은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 않았고 과정은 동일해 보였지만 각자의 판단이 달랐다. 이들은 자신이 정한 목적을 향한 모든 과정에 뜻이 다른 모두를 죽여야 했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독재자, 군인, 공무원, 이 세 사람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다수의 죽음을 서슴없이 이행한다는 공통점이 발생하고 있었다. 처단의 목적은 그저 나와 목적이 같은 편인가 아닌가 이뿐이었다. 죄 없는 자들을 죽인 독재자를 죽이기 위한 과정에서 죄 없는 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큰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작은 악행을 저지른다고 합리화할 수 있을까. 대량 학살은 큰 악행이고 이를 막기 위해 동료와 동지를 죽이는 건 작은 악행인가. 물론 번뇌가 생길 때마다 작전의 당위를 고려한다면 역사는 지금만큼 혼란스럽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죄 없는 가까운 누군가를 죽여야 대의를 이룰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안타까웠다. 누군가 동료를 신실하게 믿고 자기 일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때, 그렇게 이룬 대의란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애초 평화로운 균형은 없었고 균형을 이루려는 치열한 시도 속에서 삐걱거리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하고. 실재했던 독재자는 천수를 누리다 죽었고 시대는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이러한 죽음들은 곳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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