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셔젤 감독. 바빌론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무성 영화 시대의 끝과 함께 평생 스타였던 한 배우의 시대도 동시에 끝났다고 기사를 쓴 기자를 향해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폭언을 퍼붓다가 뒤돌아 감사 인사를 건넨다. 마지막 대화였다. 잭 콘래드는 기자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새로운 정보가 아니었다. 그토록 인정하기 두려웠던 진실이었다. 영화는 기술과 함께 진화하고 있었다. 관객은 영화가 진화할 때마다 새롭게 열광하고 있었다. 흑백 화면과 커다란 자막이 번갈아 나오던 시대에서 컬러 화면과 대사와 사운드가 들리는 시대로 바뀌면서 어떤 관객도 심지어 영화 관계자조차 그 전이 더 좋았다고 반응하지 않았다. 철기와 석기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무성 영화를 구성하던 요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감독과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는 유성 영화 시대의 배우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경쟁력이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는 영화계에서 더 이상 익숙한 배우들은 통하지 않았다. 현재의 모든 상식을 초월할만큼 위대할 수 없다면 과거는 그저 폐기 대상이었다. 대중에게 공개될 자격을 잃었고 기억에서 지워졌으며 지위가 사라졌다. 추락한 별은 어떤 밤도 밝히지 못했다. 잭 콘래드는 젊은 시절 내내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며 영화계를 지배했고 군림했으며 기준을 바꿔놓았고 무엇보다 격렬하게 사랑했다. 잭 콘래드는 자신이 영화 현장을 사랑했다는 점을 가장 커다란 자부심으로 지니고 있었다. 유일한 생명력이자 동력이었다. 취해 있었다. 약과 술과 권력에 한없이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늙은 배우가 되어 '쓰레기' 영화를 찍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영화 현장에서는 더 이상 흑백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를 찾지 않았다. 새로운 영화 현장이 잭 콘래드를 버렸고 새로운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들이 잭 콘래드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잭 콘래드와 기자의 대화는 사형 선고를 언도받는 재판장이었다. 잭 콘래드는 사형수로 포박되어 대중과의 완벽한 격리를 선고받았다.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가 웨이터에게 막대한 팁을 건넨 후 총살을 당한다. 방아쇠를 당긴 주체는 배우 자신이었지만 바뀐 시대에 적응할 수 없었던 그에겐 모든 곳이 사형장이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적어도 잭 콘래드만큼은 영원히 기억되는 영화와 배우의 존재 가치에 대해 믿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가 먼저 과거의 배우를 지웠고 그 다음에 잭 콘래드가 잭 콘래드를 지웠을 뿐이다. 허무주의는 조금 떨어져 있을 때만 낭만적이다. 현실은 차가운 시체와 무관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