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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May 07. 2024

(엄마의) 눈물에 대한 짧은 보고서

장모님을 처음부터 엄마라고 부른 건 엄마가 원해서다. 나는 아직까지 그녀의 유일한 사위. 그녀도 나를 아들처럼 여긴다. 아내에게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모를 수 없다. 엄마가 없었어도 아내와 나는 지금과 같았을까. 분명한 건 엄마 없이는 아내도 없었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관계의 도미노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중 가장 거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엄마가 없었으면 아내가 없었다는 것.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으니까.


엄마는 눈물이 많다. 그녀의 삶엔 고난이 가파랐다. 그녀도 누군가의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딸이었는데 불꽃같은 연애, 결혼, 출산, 육아를 지나오며 한 명의 개인보다 누군가의 누구 역할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엄마는 (세 자녀의 엄마라는)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오랫동안 부수고 무너뜨리며 살아왔다. 예전 사진 속 20대 초반 여성은 풍성한 컬이 돋보이는 헤어, 도트 디자인과 대담한 컬러가 화려하게 어우러진 원피스, 무심한 표정까지 모델과 다름없는데. 지금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자식들을 연민하며 자주 눈물 흘리는 말갛고 가녀린 단발머리가 되었다.


며칠 전에도 화훼단지에서 산 화분을 선물하며 잠시 들렀는데 헤어지며 인사하는 동안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연애하는 동안 찾아뵈었을 때도 울었고 최근에도 아내와 통화하며 울기도 하고 이유가 다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는 바닥이 마른 우물의 한쪽 벽을 파내어 숨은 수분을 찾아 길러내듯이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자주 보였다. 아내가 크는 동안 제대로 해준 게 없어 미안하고 아내가 애기 키우느라 고생하고 아들(나)이 돈 버느라 가엾고 그동안 애들(아내, 처제, 처남 등) 자라는 동안 못해준 게 많아서 미안하고... 엄마가 우는 이유는 늘 비슷했다. 엄마는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영원히 눈물을 흘리는 형벌을 받은 피조물 같았다.


이런 엄마와 같이 울던 아내는 언젠가부터 울지 않는다. 너스레를 떨며 엄마를 토닥이고 위로한다. 모두가 울어버리면 위로해 줄 사람은 없다는 듯이. 엄마의 삶을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엄마의 눈물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 미루어 짐작할 뿐 상상조차 버겁다. 다만 오래 보고 싶을 뿐이다. 엄마가 우리 가까이에서 아무리 울어도 괜찮으니 더 오래 같이 지내셨으면 좋겠다. 같이 고깃집도 가고 애슐리도 가고 아웃백도 가고 붓처스 컷도 가고 제주도도 가고 괌도 가고 그랬으면 좋겠다. 한때 엄마에 대해 (감정적 경험적으로) 다정하고 따스하게 묘사한 소설 한 페이지가 있다면 그 텍스트들의 완전한 형상화가 엄마겠구나... 라고 생각한 적 있었다.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녀가 있었기에 아내가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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