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재생되는 과거의 불안
또 시작이다. 얼굴이 메말라간다. 넬의 음악을 꺼낸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듣는다. 한숨이 늘고, 카페인이 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곤란한데. 몸이 먼저 알았고, 마음도 이따라 덜컥거렸다. 위험신호. 몸은 쉬면 낫지만, 녹슨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마모되면 재생은 없다. 깎인 만큼 오래오래 힘들어하다 망각의 수순을 밟을 뿐. 식음을 전폐하지도 않고, 이상행동징후가 발견되지도 않지만 보이지 않는 사이 뇌와 심장은 썩어 들어간다.
분열된 자아, 답이 존재할 리 없는 물음의 연속, 이상과 현실 간에 깨어진 협정, 길을 잃고 마음을 잃고 시선을 잃고, 별이 침묵해버린 사막의 미아가 된 어느 8월의 덥고 축축한 나날들. 타인의 필요에 의해 생존을 강요받고, 쓰러지지 않으려 다음 걸음을 내딛고, 내키지 않는 글들과 쓰고 싶은 글조차 어쩌지 못하는 단축된 체력 앞에서 모든 이유들이 오로지 휴식의 결여로 몰려든다. 평소 당연시 여겨지던 것들이 고갈되면서 슬그머니 부상하는 우울과 허무의 시간차 공격. 방어벽은 형편없어 급격히 기울어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계속 이어지는 피폐한 단어들. 피 묻은 살갗을 꿰매듯, 너덜거리는 감정들을 합리화시켜본다.
차마 흉포한 광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건, 어제와 오늘로 이어지는 이 팍팍한 공기들이 결코 낯설지 않아서다. 다음 스텝을 야금야금 짐작하게 하는 미심쩍은 조짐들. 몇 백일 더 어렸던 이전엔 수배 더 낯설어하며 한탄만 내뱉었다. 최근에야 어떤 다양성이라도 포용하고자 하는 인류애를 통해 용서와 자조를 반복하면서도, 동시에 자존심도 지키고 싶어 이중고를 자초하고 있는 중이다. 누적된 고민과 예측불허의 외부 상황, 신체 허용범위를 일찌감치 넘긴 무리한 목적들 앞에 처음 과정을 기꺼이 다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게 절실한 건 약과 위로가 아닌 조금 더 길고 깊은 수면, 잠재적 위험요소를 보험처럼 길들이고, 오늘과 내일의 삶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작정이다. 희망은 늘 식상하지만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얼마든 다시 사용해야 하겠지. 주저앉기 전에 다시 한번 직시하겠다. 그리고 자꾸만 재생되는 과거의 불안에서 이제 빠져나올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