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Jul 02. 2024

열등감과 공격성에 대하여

카피라이터로서 르노는 오랫동안 담당했던 브랜드 중 하나다. TVC, 지면, 디지털 배너, 프로모션 페이지 등 다양한 영역의 캠페인과 크리에이티브를 여러 팀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했었다.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쉐보레도 담당했었지만 르노는 거의 전차종을 회사가 바뀌면서도 담당해 와서 포트폴리오를 종종 정리하면서도 커리어에서 적잖은 비중을 확인할 수 있었다. SM6의 ‘프리미엄 세단의 새로운 기준’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TVC 캠페인을 준비했던 게 거의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그때 SM6는 중형 세단의 대명사인 현대 쏘나타를 1위에서 내려오게 했다. 이후로도 국내외 자동차 광고는 거의 챙겨 보지만 아무래도 신차 출시 등의 정보를 직접 챙기지는 않으니 모든 뉴스에 가깝지는 못하다. 이번 르노 손가락 사건도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친구는 너도 광고 쪽에 오래 있었으니 이런 사안에 주의하라고 걱정해 줬다. 손가락... 에휴. 지금 여기 쓰는 건 아마도 맥락과 정보에 대한 파악이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동시대에 특히 최근 수년에 걸쳐 빈번하게 터지는 이런 주제와 논쟁이 그저 무시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과 정보로 누적된 것들을 적는다.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은 의견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해당 영상의 일부 장면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작은 성기에 대한 비유 표현에 거대한 상처를 받은 이들이다. 남성(또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매우 작다고 다른 성별의 화자에게 혐오 표현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작은 성기에 대한 표현에 노출되어 화를 감출 수 없어 저 자동차 브랜드를 불매하겠다고 나서고 저런 (자신들을 화나게 한) 손동작을 브랜드 영상 컨텐츠 중간에 지나가게 한 사람을 욕하고 욕하고 욕한다. 국내에서 아주 오랫동안 공존한 자동차 브랜드의 한 담당자가 남성 혐오를 전시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과 신분과 직업을 내걸고 저런 작은 성기를 표현하는 손가락 모양을 노출했다고 (화가 난 이들은)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미 몇몇 뉴스 헤드라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너는 정말 작아. 요만해. 너희는 정말 작아도 너무 작아. 요만해. 이런 무언의 메시지를 기호와 상징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 자동차 브랜드 담당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이런 사악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오프라인에서 어떤 경험과 태도를 겪으며 살아가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들 중 일부는 저런 작은 성기를 비유한 손가락 움직임 장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공에게 밝히기 힘든 내밀한 진실과 무의식이 프랑스에 본사가 있는 자동차 브랜드 담당자에게 신차 소개 동영상을 통해 갑자기 공격당했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SUV에 대해 설명하는 저 사람은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려고 저 작은 성기를 비유하는 손동작을 잠시 한 게 분명해. 이건 참을 수 없는 모욕이야.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작은 성기 비유를 당하다니. 그것도 새로운 자동차 브랜드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작은 성기를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무의식에서 발현된 걸까. 작은 성기를 실제보다 더 작게 비유해서 그런 걸까. 작은 성기를 저 자동차 브랜드 담당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당혹감에서 시작된 걸까. 작은 성기는 자신이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만에 하나 저 영상의 손동작이 진짜 작은 성기를 비유한 혐오 표현이었다고 정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법적으로 입증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저 작은 성기를 비유한 손동작에 상처를 받고 분노를 표출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인가. 자동차 브랜드 담당자가 손동작으로 표현한 작은 성기 비유는 성난 사람들의 작은 성기라는 진실을 공격한 게 법적으로 밝혀졌다는 것인가. 작은 성기는 상징인가. 기호인가. 비유인가. 진실인가. 공격의 소재인가. 무의식의 비밀인가. 트라우마인가. 우울증인가. 약점인가. 자존감인가. 불안인가. 공포인가. 슬픔인가. 한계인가. 현실인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넘치는 게임인가. 2016년 트럼프 재임 시절, 나이키는 인종차별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콜린 캐퍼닉 선수를 모델로 내세우며 <JUST DO IT 30주년 기념>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에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영상으로 분노를 표출했고 우려와 달리 나이키의 매출은 31% 상승했다. 당시 분노하던 백인 남성들은 핵심 소비자층이 아니라는 점이 추후 밝혀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소개, 카피를 쓸 땐 한쪽 문을 열어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