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끝

어둠을 밀어내었다

by 백승권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다.


지나는 이의 헛소리라도 내가 가여워서 그런가 보다 라고, 여기고 싶을 정도로, 세상이 어두워 보이고, 거리가 압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지치고 지치다 지쳐서 웃는 법도 까먹게 되는 그렇게 심약해지는 날이 있다. 미워하고 단정하고 결론 내고 분노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깨알 같은 양심으로 그런 걸 성립시킬 수도 없는 이상하게 답답하고 생각의 길이만큼 해소가 빨라지지 않을 만큼 안압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지며 움직임이 느려지는 그런, 날이 있다.

음악을 듣는다고 뮤지션들이 이어폰 밖으로 튀어나와 어깨를 토닥거릴 것도 아니고, 행인들이 내 기분을 멘탈리스트처럼 읽어내어 순순히 길을 비켜줄 것도 아니며, 기다리던 차가 혼잡한 8차선을 뚫고 미친듯한 굉음으로 빨리 와줄 것도 아닌데, 하염없이 걷고 걷고 걷고 걷다가 문제의 진앙지를 찾고 찾고 찾고 찾다가 다 관두고 시간의 속도만 재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또 온다고 그날의 저기압이 한결 가뿐해질 것이냐 그것도 아니고, 인류에 해를 끼치는 수많은 악인들을 증오한다고 그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느냐 그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고 내일 당장 천공의 먹구름 사이로 천국 문이 열릴 것 같으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전에도 겪었던 날이었고, 지금도 예고 없이 겪고 있는 날이며, 사는 동안 앞으로도 몇 번, 몇십 번은 더 찾아올지 모를 날이다.

멀리 보면 휑하니 넘기면 그만이지만, 자기 위로, 대상을 모르는 용서, 묵인이 아닌, 이성적 실천적 적극적 개선 방향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평소에 잘 안 해본 복잡다단하고 성가신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날이다. 물에 젖은 솜처럼 신발은 무거워지고, 목도리는 그만 풀어도 될 만큼 열이 오르며 눈이 퀭해질 만큼 피로에 젖어 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미련과 모호함과 질문의 끝을 잘 놓을 수 없는 그런 날이다.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아내는, 아내는
말없이, 말없이, 말없이
팔을 뻗어, 팔을 뻗어, 팔을 뻗어,
내 목을 내 어깨를 내 뺨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분노는 죽었다
그렇게 미움은 죽었다
그렇게 하루는 끝났다

용서받았다.
세상을 잊었다.
어둠을 밀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