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을 찾을 수 없다

난 노력했고 그들은 죄가 없다

by 백승권

참 덧없어,라고 결론내기엔 우린 너무 적게 살았고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주어진, 아니 생각해보면 처음에 '선택'한 환경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해버린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무궁무진한 낯선 일을 겪어가며, 자신만의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생각의 벽을 쌓으며, 관점을 형성한다. 경험이 그렇게 만든다. 새로운 것에서 익숙한 것으로.

언젠가부터 놀라는 일이 적어진다. 조금씩 다를 뿐 이제껏 일어나던 일이었고, 조금만 비틀면 해결책은 늘 있기 마련이다. 경험. 익숙해짐. 편안함…? 자신을 믿게 된다. 몰랐었지만 지금은 안다. 실수했지만 지금은 안 한다. 답답했지만 지금은 해결한다. 거기서 멈춘다. 새로운 시도들과 새로운 생각들과 새로운 경험들이, 생성되지 않는다.

보호가 시작된다. 상처로부터의 보호. 간섭으로부터의 보호. 비난으로부터의 보호. 언어로부터의 보호. 타인으로부터의 보호. 지금껏 구축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두터운 보호막을 형성한다.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가 구축한 논리와 자신감으로 무장된다. 프로다운 배려라며 이해를 시도하지만 타인으로의 완전한 이입의 시도 과정이 없는 이상, 이해는 어떤 흉내의 일부일 뿐,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거의 없다. 가벼운 웃음과 제스처 정도, 이마저도 선을 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다 어느 날, 고립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에게, 타인들에게, 환경으로부터, 초심으로부터. 보호에만 몰두하다 보니 홀로 남게 된 자신을 본다. 누가 문제인 거지? 나? 그들? 모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데? 여기가 맞는 건가? 이게 맞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이 괜찮은 거야? 나의 사고방식은 괜찮은 거야? 롤모델은 어디 있을까? 조언을 누구한테 구해야 할까? 나의 편은 나 밖에 없을까? 그저 나만 바뀌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걸까? 환경이 틀린 것은 혹시 아닐까? 모두와 다르지만 결국 내가 옳았던 건 아닐까? 내가 조금 양보하면 나아지는 건 아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거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질문들이 생겨난 거지? 대체 어떤 것부터 답을 해나가야지? 환경을 바꾸면 나아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거야?

악인을 찾을 수 없다. 난 노력했고 그들은 죄가 없다. 난 다가갔고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난 몰두했고 그들은 나와 달랐다. 내가 나를 바꿀 수 없듯 그들도 끝내 그리 되진 않을 것이다. 이 문제가 끝나지 않으면 내 문제도 끝날 길이 없다. 개인과 다수의 문제, 시간과 관리의 문제, 업무와 인간의 문제, 능력과 차이의 문제. 문제, 문제, 문제, 답을 알리 없으니 이렇게 길게 늘어뜨려 보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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