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높은 밀도와 긴장
광고회사는 PT로 먹고 산다. 광고라는 업의 본질 자체가 타인의 상품을 다른 타인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중간지점에 놓인 것이라서. 광고는 제작의 주체가 제작자가 아니다. 광고는 고민의 주체가 고민자가 아니며 결과의 주체가 되어 책임을 떠안을 뿐이다. 이를 자신의 직업으로 택한 이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팀을 꾸리고 머리를 맞대고 모두가 원하는 하나의 '좋은' 결과를 위해 분투한다. 여기서 '좋은'이란 수치와 숫자다. 많이 알아주고 많이 팔리는 것이다.
카피든 디자인이든 기획이든 "난 내 일을 사랑해, 결과에 상관없이 몰두할 거야."라는 마인드는 굳이 광고가 아니더라도 어떤 업무에서도 환영받을 만한 마음가짐이지만 결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직업에 대한 저런 순애보도 유지할 재간이 없다. "널 사랑해, 네가 날 싫어해도." 이런 순진한 짝사랑은 낭만적으론 보여도 매달 급여와 관리비가 빠져나가는 회사의 금고를 채우지 못한다면 결코, 옳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창출, 이라는 차갑고 낡은 말을 굳이 갖다 붙이지 않아도 자신의 책상과 PC를 부여받은 이들은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광고 회사원들도 광고회사도 그렇다. 광고를 해야 하는 대상이 주어질 때 집단과 구성원의 존속이 유지된다.
보통, 클라이언트가 의뢰를 하면 광고회사가 참여의사를 밝히고 정해진 날짜에 글과 그림을 통해 제안한다. 흔히,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제안서와 발표(Presentation)를 통해 선정되지 않으면 광고회사는 광고를 할 수 없다. 자격을 얻지 못한다. 일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고 차후 광고 제작비와 매체 집행비를 얻지 못한다. 쉽게 말해,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광고회사에서 PT는 중요하다. 물론, PT 과정 없이 지정된 광고회사에 지정된 클라이언트가 장기간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광고회사들은 크고 작은 예산이 책정된 캠페인을 광고하기 위해 PT라는 경쟁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치곤 한다.
PT 준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매력적인 단어가 통용되는 시기다. 카피/디자인/기획은 하나의 배에 따로 앉아 각자의 노를 젓는다. 안갯속을 헤매며 방향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생각을 맞춘다. 그래서 회의라는 것을 하고 초기와 중반의 생각을 조율하며 수정하고 발전시키고 제외시키고 최소한만 남긴다. 그 과정을 통해 단 몇 줄의 카피와 단 몇 개의 그림이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수많은 A4가 오가며, 수많은 시간이 오간다
평소보다 높은 밀도와 긴장이 유지된다. 모든 과정이 완벽에 가까운 합의와 적재적소에서 이뤄지는 결정으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개인의 생각을 하나로 줄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합치는 게 아니라 하나가 아닌 나머지 모두를 제외시켜야 한다. 아쉬움과 찡그림, 고성과 열변이 오가기도 한다. 치열함의 온도와 PT승률이 비례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수번이 아닌 수십 번을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입력값과 출력 값은 다르다는 것을. 투입인원의 수와 준비기간의 길이가 결과에 영향은 미칠지언정 결정타라고 확언할 수 없다는 것을.
게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게임은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같을 수 없어서, 멀리서 보는 이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흙밭에서 뒹구는 이들에게는 매번 미소를 지을만한 여력이 없다. 납득할 수 없는 선택과 알아들을 수 없는 설득이 난무하기도 한다. 침묵하고 순응하는 자들과 반발하고 이슈를 제기하는 이들이 섞인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여 낮은 밤이 되고 새벽이 아침이 되면 PT는 철학과 생각과 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쓰이고 그려지고 말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 사이 쓰러지고 낙담하는 이들도 생겨나지만 PT는 게임이면서도 단체전이라서 모든 파트의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없다. 축구선수들이 수비수 제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본 적 있나. 골을 넣었을 때만 팔을 벌리며 동료를 껴안을 자격이 주어진다. 경기에 패해 고개를 수그리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장면은 훈훈할지 언정 당사자들에겐 비극이다.
이런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린다. 초연함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심함은 경계가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에 다다르면 어떤 결과에도 표정과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PT는 게임, 연습도 필요하고 체력 안배도 필요하고 결단과 희생도 필요하다. 그리고 결과는 이 모든 것에 영향받으면서도 이 모든 것이 무시되기도 한다.
드문 경우지만, 승부조작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니까. 페어플레이 정신을 품고 있지만 달콤한 결과에 목말라있다 보면 상대가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가 우리보다는 덜 중요하다는 대전제 때문에, 일단은 살고 보자는 이기적 생존본능이 앞서 공정함보다 자기 합리적 비겁함을 택하기도 한다. 철저한 메커니즘에 의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해괴망측한 사유로 결과가 뒤집히고 과정 중 중단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광고라는 업과 PT 안에 속해 있다.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개인과 개인, 회사와 회사, 거래와 거래, 관계와 관계 안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밤을 새우고, 오늘도 누군가는 회의 중 싸우고, 오늘도 누군가는 혼자 술을 들이켜고, 오늘도 누군가는 옥상에서 담배를 빨고, 오늘도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울기도 하며 PT를 준비하고 있다. 건투를 빌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