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게 지불한 고난
밤의 더위는 지금 입고 있는 것을 고민하게 한다. 입어서 체열의 발산을 막는 게 덜 더울까? 아님 벗어서 공기 중에 닿는 피부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히는 게 나을까? 입던 벗던 얼굴을 감싸는 온기를 막을 순 없다. 마치 포로가 된 것만 같다. 더 높은 온도와 습도로 둘러싸인 특정한 행정구역에 갇힌 사람 같달까?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모두가 비슷한 복장에 비슷한 표정으로 거리를 밤거리를 휘젓고 있다.
먹는 것으로 피할 수 있을까? 더위에 갇혔다고 여기는 순간 탈출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가지고 있는 자원과 이동 범위의 허용 수준에 따라 머리를 굴린다. 당장 내일 은행과 병원에 갈 일이 있지 않다면 급선무는 오로지 더위로부터의 해방이다. 아이스크림, 선풍기나 에어컨 등의 인공 바람, 샤워, 차갑고 수분이 많은 과일, 팥빙수 등은 1차원적 해결 방식이다.
그렇다면 공간? 열과 습도를 한시적으로 피할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되어있지만 그 역시 인파들이 뿜어내는 고성과 두통을 일으킬 정도의 산소를 줄어들게 만드는 한기로 인해 적당하지 못하다. 덧붙여 이런 공간들은 대부분 돈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 체류 자격을 획득하거나 업무라는 강제노역이 부가되기 때문에 물질적 육체적 대가가 뒤따라 오기 마련이다. 더위가 잠식하는 범위는 바다를 건너지 않는 이상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하다. 여름에 특별히 낭만적인 기억이 없는 이상, 선호 계절이 여름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봄과 가을을 꼽고, 약속과 추억이 서린 겨울이 그다음이지 여름은 순위권에 없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계절일 뿐.
비가 멈추고 바람이 멈추고 고온과 습도가 거리와 건물을 비롯한 지상의 모든 면적의 공기를 바꿔놓는 순간 사람들은 매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못한다. 무더위는 늘 사람들을 부적응자로 바꾸는 초대받지 않은 자객이었고, 보통의 일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드는 불쾌지수의 펌프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동남아 날씨를 싫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돈을 지불하고 비행기를 타고 대양을 건너 낯선 나라에까지 와서 단순히 해변과 리조트를 좀 더 구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위를 겪는 행위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휴가지에서까지 더위에 허우적거리는 것만큼 비싸게 지불한 고난도 없다.
늘 그랬다. 무더위가 오고 장마가 따라왔다. 때때로 비는 심판이라도 하듯 메마른 대기와 대지를 급습하며 노아의 방주를 띄울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을 물로 뒤덮곤 했었다. 더위가 끝났다며 안도하던 사람들은 무너진 흙산과 방파제에 아연실색하고 열기 대신 물로 뒤덮인 세상에서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집에서 칩거하며 불안해한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젖은 발과 바지를 걷어 올린 다리로 뒤뚱거리지만 종종 인간은 거센 물살을 이겨내지 못하고 생사를 달리하기도 했다. 열에 분노하던 인간은 물로 인해 심판받곤 했었다. 그중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었다. 물살은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았지만 결국 가장 고통받았던 이들은 세상에 가장 무관심 받았던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