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PT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by 백승권

2주 전 금요일이었다. 가벼운 제안이라 여겨졌다. 조금 다르다 하면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될 거라고. 하겠다고 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지금과 2주 전 사이의 과정을 돌아보면 잠시 멈추고 호흡을 고르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그동안 수많은 제안과 PT를 치러왔지만 이번 PT는 매우 특별했다. 나의 첫 PT였다.

덥석 응하긴 했지만 첫 단추부터 쉽지 않았다. 바늘구멍에 실도 꿰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교육 콘텐츠 브랜드. 대외비니 이 정도만 말해두자. 교과서 개편이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른 새로운 콘텐츠가 나왔고, 이에 맞는 영상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우리에게 내려진 과제였다. 교육, 대학입시 관련 브랜드를 담당한 적 있지만 저학년 과정은 처음이었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1차 제안은 1장으로 제안했다. 의뢰인의 가이드였다. 준수했고, 우여곡절 끝에 파이널에 올랐다. 2차 제안은 PT 방식이었다. 1차 제안의 아이디어를 확장, 구체화시켰다. 세 개의 머리가 모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교차했다. 길어졌다. 반복되었다. 회의, 회의. 정리. 정리. 회의. 정리. 회의. 회의. 맡겨진 일은 PT만이 아니었다. 굵직한 현업들이 압박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조금 오래전부터 난 스트레스 최적화가 빠르고 적확한 카피라이팅과 일처리에 도움이 된다는 걸 체득했다. 스트레스 조율이 관건이었다. 허나 시간이 겹치고 일이 겹치고 결정이 미뤄지고 의견이 엇갈리고 의견이 불일치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못한 일이 갈리자 멍해지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택시를 탔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속도만큼 아이디어는 진전되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도 도로는 정체되고 있었다.

한숨이 늘었다. 하소연도 나눴다. 이게 맞나. 고민은 당연한 절차였지만 문제 해결 자체를 위한 고민인지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고민인지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나와 우리의 고민은 후자였다. 다 끝나고 복기해보는 지금이야 많이 축약되고 걸러져 긍정적인 것들만 기억에 매달려있지만 당시엔 심각했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경계했고, 이번 제안의 과정은 대부분 그러했다. 통제되지 않았다.

늦은 시간, 집이 아닌 곳에서 골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찾는 음악도 음식도 대화의 소재들도 그 시간 떠 있는 하늘의 색과 닮아갔다. 음침했고 적막했으며 곤두서 있었고 반짝거리는 건 적었다. 눈 앞엔 어두운 골목이 있었고 길 잃은 짐승들이 떠돌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생겼고, 약속을 할 수조차 없는 경우도 늘었다. 일은 늘 손바닥에 붙어 있어야 했다. 누구도 책임져줄 수 없었으니까. 감당했고 진행했으며 정리했으며 다듬었다. 복잡한 것들은 체계를 이뤄가고 글과 그림들은 어울리는 것들끼리 짝을 이뤘다.

PT 전날부터 잠들지 않았다. 세상의 그 어떤 제안이 당일 전날에 한가로울 수 있을까. 분주했고 많은 절차가 남아있었으며 그건 모두 우리의 손으로 매만져야 했다.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 줄이고 자르고 고치고 저장하고 출력했다. 잉크를 교체하고 출력 버전과 발표 버전을 나눴다. 가로로 뉘어진 A4 종이 위에 컬러가 입혀진 서체와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다. 아침이 왔다. 8시. PT 시작 2시간 전.

발표자를 정해야 했다. 연습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현장 상황을 가늠할 수 없었다. 유려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은 유경험자의 몫이어야 했다. 수년간 데스크 작업에만 익숙해진 '우리'같은, 특히 나처럼 전무한 이에게 맡기는 모험은 말 그대로 도박이었다. 기대에 어긋날 경우, 다 그린 용이 붕어처럼 보일 수도 있는.

테스트를 통해 결정되었다. 발표에 내가 맡은 부분이 할당되었다. 2007년부터 카피라이터라고 쓰여 있는 명함을 들고 다녔지만, PT 현장에서 청중 앞에 선 적, 없었다. 기회를 피하지 않았고, 맡겨지지도 않았다. 카피라이터의 업은 그러했다. 재능이 다르다기보다는 맡겨진 부분이 달랐다. 그리고 난 무경험자였다. 이번이 첫 경험이었다. 출발 30분 전. 각자의 역할이 나뉘었다. 동석하는 광고계 선배(대표)에게 포인트를 전달받았다. 이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이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좋고, 이 시안은 이런 방식으로 말하자. 콘셉트 도출 과정에서의 방향성이나 카피가 담고 있어야 할 핵심 키워드 등의 내용이 아닌 지시를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택시 뒷자리 왼편에 앉아 겹겹이 받아 적은 메모를 읊조렸다. 발표할 내용을 다시 점검했다. 왼쪽엔 노트북, 오른쪽엔 프로젝터가 있었다. 30시간을 깨어있는 눈은 금방이라도 영면에 들 것 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은 굳어가고 있었지만 입은 깨어있어야 했다. 나는 말해야 했다. 나는 우리가 준비한 글과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들 앞에서 설명해야 했다. 설득해야 했고 이것은 돈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맘에 든다면 지갑을 열 것이고, 맘에 들지 않는다면 입도 지갑도 굳게 닫을 것이었다. 종이를 채우는 작업을 주로 하다가 발목에 힘을 주고 무릎을 세우고 화면과 청중을 오가며 입을 여는 자리에 서야 했다.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프로가 된 다음부턴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입을 열기 5분 전, 다른 부분의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카피가 귓속말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돌아오는 길.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넣었다. 몸은 이미 가수면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눈은 감을 수 없었다. 날씨가 맑았다.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눴다. 가벼웠다. 결과는 전화가 와봐야 알 수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나갔구나.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떻게 서서 움직이고 말했는지도 기억난다. 생생하게. 끌려가는 기분. 눈 앞에 비친 것들이 머리 속에 있는 것들과 합쳐져 입으로 빠져나갔던 몇 분.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겹치고 있었다. 보이는 것을 보여줬고, 의도를 전달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고객들이 알아야 할 부분임을 강조했다. 멈추지 않았다. 내가 나를 아는데 한번 멈춘다면, 거기서 게임 오버였다. 백신 프로그램 실행시켜서 윈도 임시파일 지워지듯이 알고 있는 것들과 전달해야 할 것들이 모조리 날아갔을 것이다. 만약 멈췄다면.

멈추지 않았다. 결국, 뭔가를 했다.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래서 첫 PT. 두 번째를 기약할 수 없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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