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분석).key

by 백승권

(뭐가) 없는 상황이

가난이라면 (나는)

가난한 게 맞아요.


가난이 각자의 (없는) 경험이

개별적으로 투영된 구체적 이미지라면

(저의) 가난 역시 그러한 직접 비교가

어려운 이미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상처와 고통을 수반한다는 수사는

너무 식상해서 그걸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이 미션이기도 하고


하여 왜 없는지 골몰하기보다

그래서 이 가난을 어떻게 안고 갈 것인지

아이데이션을 합니다.


경제적 궁핍이 주요 논제가 아니라서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을게요.


(제가) 재벌 3세이거나 서열 경쟁에서

위태로운 서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핵심이었다면 힙합 가사를 썼겠죠.

100평 이상의 집 크기와 럭셔리 슈퍼카와

어제 예약한 6성급 해외 리조트 이름으로

라임을 맞추며


결핍은 귀찮은 대상이죠. 늘 방해가 돼요.

내 기준과 다른 세계의 상식이

존재할 것 같은 불안을 안기고

그 상식과 다른 내 빈칸이

날 궁지로 내몰며 소외시키고

결국 상상의 군중을 창조하고

거기서 스스로 고립시키며

소수자의 유니폼을 입힙니다.

1인의 세계 안에서 구획된

다수의 인식으로부터 밀려난

소수자로서의 좁디좁은 포지셔닝.


이탈자라는 명분이 생긴 이상

가난한 마음을 벗겨내기 힘들어요.

특히 가시적 물리적 직접 경험이 아닌

상상 속에서 이뤄진

스스로 생성한 다수로부터 고립이라면

엄청난 내전을 거쳐야 합니다.


가난의 정의가 곧

시작이자 끝, 승리와 패배를 나눕니다.

제대로 정의되는 순간 논의는 끝이 나요.

명확한 정의를 통해

구체적 의미를 획득하고 싶었으니까.

이미지화는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지만 이게 어렵죠.

결핍의 대상이 자기 인식 영역의 일부라면.

마음이 가난하구나... 저런...

이런 할리우드 액션 같은 연민으로

해결된다면 편하겠지만 시도도

하기 전에 퇴장당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지 않아요. 방어벽은 높고

경계의 전류는 강하며 경비는 삼엄합니다.


이 글의 첫 문장을 쓰게 한

가난의 이미지는

빈 의자 같은 가난이죠.


누군가 앉아 있었던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

어쩌면 그게 나 자신의 확장이었는지

혼잣말의 정밀한 형상화였는지

존재했다는 믿음이었는지


가난을 인지하게 된 경위는

빈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빈 의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그걸 가난과 결핍으로 결론 내리게 했는지


결국

누가 있었는지나

뭐가 있었는지가 아니라 대체 왜

그걸 빈 의자라고 인식했는지가

전부일 수 있겠죠.


아무것도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그 자리엔

아니 그 자리 자체가

아니 나 역시


실상과 상상이 구분되어 있고

상상의 시간이 더 압도적이라면

정신의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요.


애초 인간은 흑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데


흑백의 검정 부분을

없음으로 오해하고

그걸 결핍과 가난으로 확장 해석했다면

그게 시작점이었다면

모든 도미노는 잘못 넘어진 건데


눈을 감는다고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데


가난은 착각이었을지도 몰라요.

애초 빈 의자는 없었고

애초 없었던 건 잃거나 나빠진 게 아니죠.


그렇게 여기면 며칠은 편해져요.

보이든 보이지 않든

느끼든 느껴지지 않든

인식을 인식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포근한 촉감을 느끼며 퇴화할 수 있다고


화석이 되어

기우뚱하는 어느 의자 다리의

밑에 놓일 수 있다고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