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매거진. 트위터에 대하여

내가 트윗을 이렇게 연모한다

by 백승권

쓰지 않는 글에 대한 핑계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쓰는 일에는 이골이 나 있다. 시간은 모자라지 않았다. 잠이 오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필요가 덜 느껴졌을 뿐이었다. 꼭 여분의 시간에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 조차 들지 않았다는 게 더 맞다. 긴 글로 남길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글로 남겨야 한다면 그 방식이 꼭 글이어야 한다면 그런 게 있을까? 글의 형태를 빌려 시간을 멈춰둬야 할 만한 그런 극적이고 강렬한 사건과 감정이 무엇이 있을까? 있었을까?

트위터는 140 자라는 기적의 숫자를 만들어냈다. 지상에 발을 딛고 사는 현자와 무지한 자를 가리지 않았다. 그저 휴대폰만 있다면 정해진 분량을 넘지 않는 생각의 텍스트화가 언제든 가능했다. 시간과 인내를 모독하던 만연체로 가득했던 여백 많던 지면은 사라져 갔다. 거길 채울 시간에 트윗을 쪼개어 지금과 현재 이곳의 상황을 옮겨 적는 게 더 매력적이었다. 적어도 거긴 읽는 자들을 향한 노출의 보장이 있었고 공감을 얻는다면 독자의 확장도 가능했고, 반응도 즉각적이었으며 이런 것들이 죄다 수치화하여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위기는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긴 글을 써야 하는 근거를 다소 미약하게 해 준 건 사실이다. 그때 그 시간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은 개인과 다수의 생각을 섞고 영상이나 이미지 등의 부가 콘텐츠를 더했음에도 140자 안에서 모두 표현될 수 있었다. 이것을 글이라고 부르는 게 맞느냐는 다른 문제. 중요한 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를 엄수하고 있고, 그 안에는 일정 분량 이상의 긴 글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점이다. 꼭 구체적 감정과 상황과 비평을 A4 한 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대답에 트위터는 늘어나는 가입자수로 답하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생각보다 많은 다수들은 짧고 강하며 재미있어서 퍼뜨리기 쉬운 글에 더 열광하고 있다고. 더군다나 그러한 행위들이 세상을 자신의 생각으로 최적화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물론, 140자는 소설 한 편에 비하면 찰나의 기록에 가깝다. 대사 한 움큼을 다 적을 분량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긴 글에서 인상 깊은 부분을 트윗에 옮겨 적긴 해도 트윗의 인상 깊은 글을 굳이 소설 등의 긴 분량의 문학 장르에 깊이 적용시키지 않는다.(물론 이 과정은 유명인의 저서를 통해 반박될 수 있지만 트윗은 아직 문학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그럴 필요조차 고려되지 않는다.) 트윗은 그저 텍스트로 소통하는 인터넷 공간 상의 놀이터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짧은 분량으로 인한 문장의 함량은 떨어지고 사람들이 모든 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140자 안에 무엇을 담고 있냐, 그것은 나의 기호와 연결되어 있냐 정도의 이슈를 퍼 나르는 도구 정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글이 과연 분량이라는 절대적 기준으로 가를 수 있느냐는 다른 가치의 문제다. 140자는 하이쿠를 담기엔 너무 많고 완결된 서사를 담기엔 너무 좁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이 분량에 대다수 동의하고 적용하며 지금도 무수한 변형을 통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일간지와 월간지가 다르듯 농도와 무게를 같은 저울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트윗은 긴 글이 안고 있던 이슈성을 이미 상당 부분 포괄하고 있고, 사람들은 점점 긴 글에 시간을 들이는 대신 트윗을 휘휘 넘겨가며 눈과 기억에 마구 담아 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긴 글이, A4 한 페이지만큼의 글이 독자의 시간을 앗아간 만큼의 기대치를 환원시켜줄 수 있을까? 상상을 확장하면 훗날 트윗의 형태를 지닌 웹진이 창간하지 않을까? 자본과 대기업에서 독립된 형태를 지닌 다양한 생명력 종이 잡지들이 창궐하고 있는 지금, 트윗은 이미 존재 자체로 이를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만드는 매일 매 순간의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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