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원했던 문재인의 대한민국
연애. 순응과 저항의 나날들.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우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뛰어넘는 방식들을 궁리하며 남자와 여자는 눈 앞에 서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 사람을 넘어 거대한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물론 굳이 누군가를 품지 않더라도 닥치기 마련이긴 하다. 시간은 누구도 거스르지 않고 공평하게 찾아오니까.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는, 연애에 푹 빠진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닌 타인의 감정과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우주와는 다른 또 다른 차원의 우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국외로 떠나지 않아도 ‘위대한 한걸음’을 딛게 되는 것이다.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세상에.
남자와 여자를 나누지 않아도 비슷한 시절을 지나는 인간으로서 또는 비슷한 온도의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로서 연애는 그 자체로 성장기다.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파생하며 이런 불꽃들은 두 사람만이 아닌 주변으로 번져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영향을 주고받는다. 둘이 주변 환경에 미치고, 주변 환경에서 둘은 영향받는다. 종종 돈과 시간이라는 조건만 즉각 주어지면 대부분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 같지만 이 또한 간단치가 않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둘은 서로에게 다 말하지 못한 각자의 사건들을 겪으며 상대방과 최단거리에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연애가 태생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은 이렇게 드러난다. 둘 외에 어떤 변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방 자체가 아닌 상대방의 환경, 상대방의 시간, 상대방의 자본, 상대방의 기분, 상대방의 태도 등 모든 것을 독점하고 할애하며 이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연애는 성립된다. 단 둘만이 있는 세계. 그곳이 어디든. 둘로써 완전한. 이런 조건들이 표면적으로(라도) 빈틈없이 갖춰진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져야만 상대는 안심한다. 변수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여긴다. 자신과 상대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연애는. 하지만 그게 쉽다면 이런 글 역시 필요하지 않았겠지.
연애가 안 풀리는 이유 중 당사자의 의지와 문제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 환경에 휘둘리는 인간 나부랭이 둘이 만나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이들도 있겠지만 연애를 향한 의지와 실로 그 의지가 실현되는 비율이 차이 나는 것은 왜일까. 단지 외모와 경제력 때문일까? 상대가 아닌 다른 것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감정이 소모된 것은 아닐까? 나 하나 생존하는데도 급급해서 죽을 지경인데 다른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서 사랑한다는 게 사치로 여겨져 버린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기 앞서 나 하나 숨쉬기 조차 벅찬 세상 속에서? 연애에 골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아니 누군가를 사귀고 있든 아니든 연애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연애에 필요한 조건을 포함한 주변의 다양한 환경을 모조리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택을 해야 하고 매번 희생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선택의 고민에 머리를 싸매는 이유는 너무 극명하다. 두 경우의 비중을 비슷하게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인 만큼, 연애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연인 대 친구, 연인 대 회사, 연인 대 가족, 연인 대 잠, 연인 대 식사, 연인 대 운동, 연인 대 공부, 연인 대 피로, 연인 대 게임, 연인 대 인터넷, 연인 대 드라마 시청, 연인 대 여행, 연인 대 휴가, 연인 대 나 자신... 쉽게 말하면 연인 대 연인과 다른 사람들과 연인이 속한 곳과 다른 환경 정도 될 것이다. 여기서 갈등한다는 것은 연인의 비중이 반대편에 올려진 다른 것들보다 낮다는 것일 테다. 너무 당연하고 단순하지 않은가. 그 사람이 더 소중하다면 왜 고민의 상황에 이르나. 연인을 선택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고 있지 않아서 연애가 풀리지 않고 있나? 연인과 연애에 올인하지 않아서? 다 제쳐두고 연애에 몰입하기엔 사랑의 순수를 섬기는 순정파로 살기엔 현실은 지독하게 퍽퍽하다.
현실은, 연애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어떤 회사는 밤과 새벽, 주말까지 몽땅 압수하기도 하고, 어떤 가족은 현실의 다른 기준을 들먹이며(딴 사람 만나기 전에) 자신부터 온전히 추스르길 바라며, 친구들도 비슷한 처지라 연인과의 약속시간과 항상 겹치고, 그래서 잠은 늘 부족하고, 식사는 거르기 일수며, 공부할 시간도 마땅치 않고, 오래간만에 게임하려면 전화와 문자가 오며, 인터넷 할 시간은 더더욱 그러거니와 드라마 시청은커녕 휴가 때 여행지 살펴볼 시간도 요원하기만 하다. 없는 시간 속에서 사투하는 동안 감정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체력은 떨어지며 연인을 만나도 숨만 쉬고 있을 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퀭한 눈빛으로 지나는 행인들만 초점 없이 바라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장애를 보란 듯 부숴버리며 연애다운 연애를 만끽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 그들은 초인인가.
처지와 환경을 단숨에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나이가 찬다고 이성들이 굶주린 듯 달려드는 것도 아니다. 이대로라면 현실은 더욱 팍팍 해질 테고, 취향과 태도로 무장한 세련된 독신으로 늙어갈 자신도 없는데 연애는 그저 드라마 속 재벌 2세들의 이야기로만 남겨질 뿐이다. 억울한 일이다.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이루며 여기까지 왔는데 연애는 결코 토익점수만큼 판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었다. 나를 사랑하기조차 힘든데 남을 사랑하는 연애 따위가 올 길이 있을까? 가능할까? 자신을 바꾼다면 세상이 바뀐다지만 그렇다고 수십 년 이렇게 살아올 자신을 바꿀 자신이 없다. 매로 후려치며 굴리거나 세뇌를 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가혹히 굴더라도) 나는 바꿀 수 없다. 바뀌지 않는다.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다. 환경이 그 속의 사람들이 그 사이에서 이뤄지는 관계가 연애에 알맞게 조성되는 수밖에 없다. 그걸 개인의 에너지로 무슨 수로 바꾸나. 개인이 환경을 바꿀 수 있나.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나?
있다. 적어도 5년 동안은 서서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연애를 위한 최적의 환경은 개인과 개인이 모이면 바꿀 수 있다. 협동해서 뭔가를 으쌰 으쌰 하자는 게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질 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연애를 위한 최적의 환경은 시스템이 개인을 향한 태도를 바꾸고 나서야 개선될 수 있다. 개인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의견과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연애를 위한 환경 또한 개선될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이 한계에 다다를 때 시스템이 바뀌면 그 변수를 빈틈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연애하고 싶다면 시스템을 바꾸는 데 힘을 모으면 된다. 적어도 5년 동안은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투표해서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를 뽑는다면 가능하다. 난(우린)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때 연애를 했고 노무현 정권 말기에 결혼을 했다. 지난 5년은 연애를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들었고, 앞으로의 5년은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꿈꾸며 연애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문재인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가 집권하는 시기에 연애하고 싶다. 그의 공약들이 이뤄지는 세상에서 연애하고 싶다. 생존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를 이롭게 여기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앞으로의 5년, 문재인의 대한민국에서 사랑하고 싶다.
이것은 나의 의견이다.
내가 모르는 당신과 다를지도 모를.
내가 모르는 당신과 같다면 무척 고마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