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생명들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서울아동복지센터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4세에서 10세가 대부분, 열다섯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었다. 지정된 두 시간여 동안 무엇을 할지 같이 갈 인원들과 며칠 전부터 준비를 했었다. 마침 연말,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더라도 산타가 가져다준다는 선물은 기다릴 것만 같았다. 저 나이 적 성탄 선물이란, 쉽게 잊힐 수 없는 기억일 테니. 일 년에 한 번 누군가에게 공식적으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특별한 경험일 테다. 나이를 막론하고 웃고 떠드는 이날에 아이들은 오죽할까.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앞서, 만들기는 겨울밤에 어울리는 등으로 결정했다. 거기에 다양한 색지를 오려 산타, 루돌프 등 연말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솜이나 스티커로 효과를 덧붙이기로 했다. 남은 예산으로 선물을 고민했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고민의 결과가 봉사활동 당일까지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준비할 적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선물은 매직으로 하얀 플라스틱 판 위에 쉽게 썼다 지울 수 있는 화이트보드와 털모자를 사기로 했다. 당일 정오, 수서역에서 모여 같이 출발하기로 했고, 미리 나와 커피숍에서 공들여 포장을 했다. 차로 10분여의 거리. 주변의 가느다란 나무들과 덜 녹은 눈, 아파트 건립 공사로 파헤쳐진 땅과 젖은 도로. 짧은 혹한이 지나간 서울의 초겨울 풍경이었다. 서울아동복지센터 도착.
인사를 하고 안내에 따라 방으로 이동했다. 얼굴을 처음 마주하는 어색한 몇 분이 지났다. 여섯 평 남짓한 놀이방에 아이 열다섯 명과 어른 여섯 명이 앉았다. 각자 만들기를 시작했고, 내가 맡은 아이들의 이름은 성민이와 희원이었다.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등은 10초 만에 조립되었고, 프린트한 사진을 보고 오려 만든 루돌프도 간단했다. 하지만 같이하는 게 중요하니까. 난 색지를 오릴 테니 너희는 양면테이프를 자르거라. 그리고 붙여. 거기 말고 이렇게, 눈의 위치에는 눈을 붙여야 하고 입의 위치에는 입을 붙여야지. 어이구 잘하네. 응 그렇게. 성민이와 희원이는 나이차가 있었지만 아홉 살 성민이가 네 살 희원이를 잘 챙겼다. 모양이 갖춰지고 눈과 뿔이 자릴 잡았다. 다 만들었다. 등.
선물을 나눠줄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화이트보드에 열광했다. 희비가 엇갈렸다. 화이트보드의 개수는 아이들 수보다 적었으니까. 화이트보드를 받은 애들은 금메달리스트처럼 온방을 뛰고 소릴 지르며 환호했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침울해하거나 울음을 터뜨리고 교환을 강하게 요구했다. 우린 당황했다.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나올지 미처 몰랐다. 연말 시즌 아이들은 방문객들의 선물에 익숙해져 있었고, 발을 들인 순간부터 선물 선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데다가 선물의 성격으로 계급이 나뉘다니. 갖지 못한 자는 울고, 가진 자는 웃고 있었다. 양보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우는 아이의 품엔 여전히 원하는 화이트보드가 없었다.
결국 봉사인원을 이끌어주신 MJ님이 털모자를 화이트보드로 바꿔서 저녁시간에 다시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로 하셨다. 내가 리더였더라면 그리 못했으리라. 복지센터 담당자 분도 우리가 사주면 된다고 만류하셨지만 결국 리더의 의지로 인해 아이들은 모두 원하는 화이트보드를 갖게 되었다. 화이트보드 그게 뭐라고. 나 같은 속물 어른 인간이 보기엔 그저 유니클로 양말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3천 원짜리인데.
아이들에겐, 전부였나 보다. 다른 아이와 나를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내가 가진 것과 네가 가진 것이 같은. 그래서 나도 너처럼 비슷한 대우를 받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기적의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적어도 이날 만난 아이들에겐 모두 다 같아도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으니까. 어른들의 직무유기로 인해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었으니까. 그 상처로 인해 집이 아닌 기관에 잠시 맡겨진 아이들이었으니까. 가시적인 동정을 거두려 해도 사실 자체를 감출 수는 없었다. 상처 받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12월의 유일한 위로이자 보상이었는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겨울은 똑같이 지나간다. 하지만 저 날 만난 아이들의 체감온도는 더욱 낮겠지. 바람과 눈을 막아줄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서적 물리적 보호막이 없을 테니까.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질까? 몸과 마음이 덜 자란 저 시절의 생채기들이. 아문 듯 보인다고 통증의 기억마저 사라질까? 다정한 어른인 척 행세하며 복지센터의 아이들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분명한 건 죄책감만으로는 저 아이들을 도울 수는 없다는 것. 억울한 생명들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을 바꾸는 데 참여해 동의와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투표라고 부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