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가는 길엔 눈이 많이 왔다
길을 어려워한다. 기억하지 못한다. 새로운 지형에 대한 적응이 서툴다. 밤과 낮의 길이 달라져 헤매고 휴대폰 지도가 없다면 멈추기 일쑤다.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다소 낮은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지금 이곳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도 아닌 데 장소를 옮기는 것은 늘 난감한 일이다. 우연히 헤매는 일은 차라리 흥미롭지만 분명한 행선지를 정해 두고 경비와 탈 것을 고민하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주도적이지 않고 머뭇거릴 때도 많다. 이처럼 길에 대한 부적응은 여행에 대한 심리적 거리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속초로 향했다. 고속버스를 탔다. 터미널엔 사람이 가득했다. 눈은 집을 나설 때부터 오고 있었다. 속력은 줄지 않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표를 먼저 끊고 싶었다. 예약 내역은 출발지가 그곳이 아니라 되어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따로 있었다. 어차피 사라질 표가 아니니까. 아바이 순대를 먹으러 걷기 시작했다. 커다란 다리가 보였다. 느리게 떨어지는 눈. 평지와 낮은 담장의 집들이 듬성듬성 무리를 이룬 주변. 멀리 산은 하얗고 높았다. 좁은 갓길은 오르막으로 변했다. 바람이 춥지 않았다. 멀리, 작은 해변과 느린 파도를 지닌 바다가 보였다. 모래 위의 사람들. 먼저 식당을 찾았다.
아바이 순대는 맛있었다. 긴 걸음의 보상으로 충분했다. 순대국밥에서는 철수세미가 나왔다. 듣자 하니, 뒤에 앉은 손님에게도 나온 것 같았다. 주인은 순대국밥 값은 받지 않았다. 우린 바다로 걸었다. 모래를 밟았다. 미확인 비행물체를 기다리는 듯 멍하게 서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사진을 찍었다. 주변의 모든 정지된 것들과 움직이는 것들이 사진이었다. 빨간 등대로 이동했다. 아내와 두 아이와 같이 온 아저씨가 커플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도 찍어드린다 하니 10년 살면 그럴 일 없어진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의 독사진을 찍어주고 자신의 독사진도 찍더라. 웃었다.
시장으로 가려면 갯배를 타야 했다. 100미터 못 되는 사이를 줄로 연결된 배로 이동했다. 뱃삯으로 200원을 받았다. 사람이 많았다. 시장 입구엔 상주 곶감을 파는 트럭이 있었다. 맛있었다. 사진 않았다. 즐비한 수산물 사이를 걸었다. 할머니들이 파는 생선들은 비슷비슷했다. 이름은 몰랐지만 묻고 싶을 만큼 궁금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니 누구는 더 찍으라고 하고 누구는 찍으면 사야 한다고 했다. 튀김집으로 갔다. 작은 새우튀김 열 마리에 5000원이었다. 순대가 다 소화되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이동이 있었고 먹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젓가락과 휴지가 널브러진, 다 낡은 테이블에 앉았고 새우튀김은 오징어튀김 몇 개까지 덤으로 더해져 한 가득 차려 나왔다. 맛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날 그 시간 그곳이 아니라면 다시 먹어도 느끼지 못할, 처음 만나는 고소함이었다.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더 먹었을 것을. 씨앗 호떡 파는 곳을 찾아야 했다.
호떡 줄이 길었다. 대부분 커플과 가족이었다. 금방 앞으로 나아갔지만 워낙 길어 오래 서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도 신기한 듯 물었다. 만석 닭강정과 씨앗 호떡 중 누가 더 돈을 많이 벌까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기력이 떨어진 후 체인점을 내면 풍요로운 노후가 되지 않을까 등등을 이야기했다. 40여 분이 지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반죽을 기름에 부친 후 씨앗이 든 설탕을 다 부쳐진 호떡의 옆부분을 터서 밀어 넣더라. 손놀림과 포장, 매너까지 능숙했다. 인사하고 만석 닭강정으로 이동했다. 뜨거운 호떡을 바로 호호 불어 먹었더라면 더 맛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순대와 새우튀김으로 자리가 없었다.
씨앗 호떡집과 달리 만석 닭강정은 시장통 중앙에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즐비했지만 가자마자 계산해서 한 상자 들고 나왔다. 채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속초 시내를 뱅 돌았다. 조금 큰 강경 같기도 하고 조금 작은 순천 같기도 했다.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출발시간을 바꿨다. 커피숍에서 잠시 몸을 녹였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엔 눈이 많이 왔다. 집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호떡은 맛있었다. 닭강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