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윗. 2012.11월 - 6월
한순간도 빼앗길 수 없었을 테니까. 집착에 의한 분노. 탈이성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 자비와 거래하는 것만큼 치졸한 짓도 없는 듯. 결국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피해를 입는 듯. 집착이든 아니든 어떤 관계는 연결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여자는 안 자고 있었다. 문으로 달려왔다. 어떤 반려동물도 더 빠를 수 없을 듯한 속도로. 턱을 작은 어깨에 괴고 한참을 회전목마처럼 돌았다. 따뜻함. 부드러움. 포근함. 그제야 알았다. 내내 온전한 정신 인척 했어도 몸은 달랐다는 걸. 떨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갈수록 어여뻐지는 여인을 홀로 두고 사내는 등을 보이며 일터로 향한다. 문을 나서자마자 환영처럼 아른거린다. 존속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모순은 늘 감당하기 어렵다. 아 따뜻해. 이마와 뺨 위에서 하늘거리던 머리칼과 웃음이 생생해.워우워어 #무협지 같네..
자아가 강해 그런가. 사람 (잘) 믿지 않는다.'내 사람' 정하는 기준 있지만 극소수고 앞으로 정원이 늘어날지도 의문이다. 사람이 사람(의 형상을 갖춘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에 대한 입장도 같았다. 웃긴 건 난 바뀌었다는 점. 이 여자가, 그렇게 했다.
완전한 순간은 밤에 찾아왔다. 길고 가냘픈 여자가 다릴 베고 스르륵 잠들 적에. 내가 모를 시공간을 헤매고 있을 테고 난 그곳이 어디고 누굴 만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아까 (누군가 먼저) 죽음에 대한 이야길 할 적엔 둘 다 울먹였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둘이.
만나는 일이 금기인 시절도 있었다. 그때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오늘은 수요일이었겠지. 우리 외엔 안 보이고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감정과 촉감의 잔상이 여전하다.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감지하고 있다. 인간과 가장 먼 존재와 살고 있다.
3년 전 오늘. 결혼했다. 새벽부터 화장과 머리를 하고 친구의 벤츠를 타고 식장으로 달렸다. 축가 부를 때 목젖까지 울음이 차던 기억이 선명하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어른들께 절을 올리고 돈봉투를 챙긴 후 오후 다섯 시의 인천대교를 지났다. 완벽한 하루였다.
안 보고 싶었다는 농담엔 소질 없었다. 네 시간 거리 타지에 차려진 성찬과 화려한 식기 앞에서 누군가 떠올리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돌아왔고 빈집에 없는 이를 재촉했다. 마중 나갔다. 멀리 보였다. 손을 흔들었다. 다시 둘. 아니 다시 하나. 비로소 온전한 하나.
자고 있다. 기다렸다. 휴대폰이 머리맡에 있었다. 잠들 적마다 조금씩 어려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문 입, 모은 손, 곧은 다리, 머리카락, 눈썹, 뺨, 숨소리, 고요... 내가 아는 한 여자는. 나랑 같이 산다. 그래서 오직 나만, 이런 기록을 할 수 있다. 알 수 있다.
대전 사는 동생을 마중했다. 아내는 왼쪽 어깨에 지친 몸을 뉘었다. 버스는 달리고 창밖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차가 있었으면 편했을걸, 이란 생각을 다시 했다. 약속 있는 월요일이었으니까. 무릎과 무릎이 닿고 손등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온기. 부드러움. 밤. 감은 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도 내가 실존하는 특정 대상과 이토록 격렬하면서도 오래 지속되는 감정의 온도를 공유하게 될 줄 몰랐다. 계약서에 싸인이나 선언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다르게 말하면, 새로운 난 열세 살이다.
보드라운 뺨. 아기 냄새. 숨소리. 어둠. 하얀 이불. 하얀 배게. 하얀 침대 시트. 어제의 대화는 진지했다. 솔직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았다. 짐작했던 부분을 확인했고 무엇이 더 소중한지 분명해졌다. 오래 만난 사람들에겐 놀라운 균형감각이 존재한다. 계속 사랑받을 것이라는 믿음.
나랑 같이 사는 여자는, 매일 보면서도 뜨거운 고백을 서슴지 않고 아이 같은 눈빛이 식지 않으며 귀여운 목소리가 녹슬지 않고 내가 배우지 못한 모든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며 바른 판단과 결정으로 이끌면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나랑 같이 사는 여자는.
둘이서 마스크팩 붙이고 나란히 거실에 눕는다. 비는 멈췄고 선풍기는 회전이다. 조명은 약하고 창밖은 조용하다. 숨소리가 들린다. 잠든 사람. 여름밤의 여유로움이 완전할 필요 있을까. 행복을 단어가 아닌 등장인물 있는 문장으로 말하고 싶었다. 사랑을 쉰 적 없었다고.
처음 머리 길이를 기억한다. 수능 막 끝낸 여고생이었다. 만나는 동안 처음 본 그때보다 주로 길었고 최근엔 많이 잘랐다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본다. 귀를 가리거나 목 뒷부분에 흐드러지고 뺨에 곡선을 그리는 것들. 머리카락만 매만지다가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한다.
어제 퇴근시간이 애매했다.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을까. 집은 멀고 허기는 곁에 있었다. 전화를 걸고 미안하다 말했다. 나는 회사 밖에서 동료들과, 아내는 집 안에서 홀로 먹었다. 먹는 내내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작은 걸 선물했고 그녀는 웃었다, 더 예쁘게.
지금처럼 아이가 내 한쪽 다리를 자기 온몸으로 꽁꽁 묶어버린 채 잠이 들면 일순간 내게 남겨진 여러 지향점들은 동력을 상실한다. 이런 자세와 체온으로 날 좋아해 주는 사람과 시간을 독점한 상황에서 또 다른 욕망의 부가와 꿈의 실현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