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원작. 민규동 감독. 파과
과일이 썩으면 버려진다.
사람은 썩기 전에 늙는다.
요즘은 짐이 되지 않는 사이를 생각하곤 한다.
너무 늙기 전에 젊음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죽거나 사라지는 건 어떨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긴 병과 초라한 노화로 연명하기보다
남은 자들의 보다 여유로운 여생을 위해
내 존재감이 짐이 되기 전에 줄여주는 건 어떨지
실행 가능한 옵션에 대한 탐색 의지를 지니고 있다.
물론 가까운 이의 영구적 부재는 리스크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게 존재의 리스크보다 작다면 선택의
여지는 있다. 내겐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가까운 사람에게 말했더니 놀라긴 했지만.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이른 재촉보다는
존재가 부담이 될 때 무게를 덜어주자는 고민 정도다.
아직 모른다. 더 살지 않았고 책임이 있으며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줄 때마다 더 많이 받는 사람들.
모든 것을 책임의 영역에 두는 것은 팍팍하지만
이만큼 강력한 연결고리는 흔치 않다.
혈연이 아니더라도 아름답고 애틋한 시절을
함께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더 나이 들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를 냉장고 야채칸에 눌어붙은
썩은 과일처럼 여기게 될까.
과거의 인연에 매달려 남은 젊음들
가능성을 깎아 먹는 억지 존중의 대상이 될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산 채로 걸어 다니고 맡겨진 일을 하며
선택과 판단을 하고
시간의 가치를 따져야 하니까
조각(이혜영)은 전설이었다.
스승의 복수를 위해 단숨에 26명의 목을 땄다고 했다.
그렇게 스승을 이어 전설로 등극했다.
세상의 쓰레기를 죽여 없애는 게 과업이었다.
자부심과 투지를 지니고 있었다.
투우(김성철)가 회사에 합류한다.
조각을 죽이기 위해 여러 생명
조각내며 살아있었다.
복수는 이성의 명령이었지만
그리움은 감성의 브레이크였다.
투우는 밥 한 그릇 얻어먹다가 남은 생
조각날 뻔하고 다시 복수를 꿈꾸지만
애초 유사 엄마로 자기 최면을 걸어놓은 후라서
장기 경력자를 압도하기에는 어림없었다.
조각은 썩어가고 있었다.
신분 노출 후에도 목격자를 살려둘 정도로
공과 사의 구분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세계에서는 즉결 처형 사유였다.
조각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게 없었다.
그런 삶이 서서히 회복 불가의 상태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신세를
연민하지만 결과는 늘 죽거나 다치며
위태로웠다. 조각은 살아남았지만
스스로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타인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었다.
내 직업은 킬러는 아니지만 언젠가
조각 같은 상황과 분명 마주할 것이다.
스스로의 나약함에 삶이 짓눌려
서서히 무너지는 상황이.
그전까지 주어진 삶이란 게 있다면 그저
운과 허무에 맡기고만 싶지는 않다.
올바른 방향성과 노력이 늘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다양한 가능성만 점쳐볼 수도 없고.
언젠가 동료들과 멀어지고
가족들과의 애착은 새로워지고
일은 시대의 적응을 마쳐야 할 것이다.
썩은 과일로 버려지기 전에
생과일주스 믹서기에라도 들어가려면
하지 않았던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선택이 부메랑처럼
밥상 앞으로 날아올지도 모르고.
얼마 전 지인이 그랬다.
생각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그게 진짜라면 나는 지금
지금 여기에 없었을 거라고 답했다.
내가 탄환이라면 끝내 어디에 박힐지 궁금하다.
인간의 살점을 파헤치며 뚫고 가는 건 별로고
지금껏 가본 적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오래 날면서 마지막 비행을 즐기고 싶기도 하다.
요즘은 어떤 생각을 자주 하고
그 생각의 누적이 날 어떻게 바꿀지
궁금해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