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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자살법. 광장

최성은 감독. 광장

by 백승권

태어나는 건 모두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고

죽어가는 건 누군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있어


기석의 동생 기준(이준혁)이 죽었다는 소식에

기석(소지섭)의 모든 기준은 경계를 해체해요


나만 거리를 두면 문제없을 것 같았던 세계가

내가 거리를 둬서 동생을 사지로 보내야 했고


기석은 애초부터 신이어서 고민의 여지가 없었죠

자신을 숭상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피조물과

동생의 죽음과 연관된 모두를 제거하면 그만이니까


모두 안에는 자신도 있어요

존재했던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고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 창조한

세계도 모조리 무너뜨리기로 했고


자신이 만든 모래성을

자신이 부수는 것은

모두가 납득할 선택이었어요


기석은 스스로 죽기 위하여

누구도 두려움 없이 죽이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덤비고 덤비고 덤비고 덤비고

찌르고 때리고 죽이고 죽여요


그 과정에서 기석은 아무리

몸이 터져라 맞고 던져지고

칼에 찔리고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아요.


복수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

에너지가 줄지 않는 치트키를 쓴

넷플릭스 롤플레잉 게임이니까


깡패들이 회사를 합치고

검사가 다 썩어 자빠지고

이런 장면은 모두 병풍이고


재빠르고 또렷하고

확실하고 거칠게 박동하는

목을 뚫는 칼날과 철철 뿜는 핏물

느리게 흐려지는 동공

땅으로 꺾이는 고개


원작을 탐독해서 저러다

기석이 혹시나 장렬히

죽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죠


거나하게 합동 장례 치르던

아수라(2016)처럼 등장인물 다 잠들어야

깔끔하고 절도 있는 엔딩일 텐데


꼬마 시절 회상 장면은 없었지만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


먼지에서 먼지로

재에서 재로

피에서 피로

캠핑장에서 캠핑장으로


저렇게 죽거나 죽여야

기어이 죽을 수 있구나


이게 만약 한 편의 거대한 은유라면

저는 그동안 몇이나 죽여 왔을까요

앞으로 저는 몇이나 더 죽여야 하나요


그렇게 많은 인간

관에 넣을 새도 없이

쉼 없이 저세상 보냈으면서

원수 아버지 장례일 엄수는

기다려주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너무 멋있어도

너무 비장해도

너무 타락해도

너무 비겁해도

너무 몰려다니거나

너무 침묵해도


어차피 7부작 안에서

걸어 다니는 분들 대부분

숨을 거두는 게 시즌1 같았는데

기석씨가 너무 힘들어서 잠드신 건지

너무 많이 찔려서 기절하셨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시즌2도

광장은 열려있겠다 싶었어요

가능하다면 거의 레이드(2011) 급으로

원작 분위기를 살린다면 좋겠지만

부활의 키는 넷플릭스만이 알겠죠


조한철씨가

아빠 자리 탐내던 애기에게

너 하나 믿고 우리 직원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떡할 거냐고

윽박지를 때 울컥했습니다


물론 저런 팀장 넘쳐도

임원급이 나가리면

조직이고 뭐고 소용없죠


조한철씨 정도면

서치펌에서 콜이 많이 들어왔을 텐데

거기까지 올라가느라 타사 직원

여러 명 보내셨을 거 생각하면

동기에게 그런 대우받으신 것도 납득이 가요

아무리 눈에 힘주며 열심히 살아도

각자 인생 허망한 부분이 있으니까


미야모토 무사시가 활보했던 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건

서로의 몸과 몸을 부수는 과정에 매료되는

흥분과 동경의 시장이 견고히 형성되어 있어서겠죠

광장의 구경꾼들처럼


다들 사느라 힘들고

타인에게 잔인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죽음이 고민의 주제가 아니었던 적이 드물었는데

짧은 칼로 단숨에 보내는 장면을 여러 번 마주하니

최후의 죽음까지 고통 없는 과정을 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싸움도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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