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윗 모음
페북에 (희귀한 신체변형 일어난) 아픈 아이들 돕자며
사진 올려 나르는 사람들 이해하기 힘들다.
대부분 해외출처 사진이고 좋아요 누르면 된다는데
설령 가능하더라도 많이 놀라게 됨.
그냥 지나가면 냉소이고 클릭하면 중간이라도 되나.
이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자본의 잔혹한 압박에 밀려
희망마저 빼앗긴 채 자살한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빈소에 조심히 찾아가
면목없다는 듯 어느 문상객에게 소주를 건네는
문재인의 사진을 보니,
1470만 명이 그리던 대통령이
저런 사람인가 싶다.
목적과 보복을 위해선
살인을 밥 먹듯 하는 갱들이
식사 전에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신에게 기도를 하고 성호를 긋는 모습이라니.
신은 어쩌다 범죄자들의
가장 이기적인 보호자 역할이 되어버린 걸까.
#보드워크엠파이어
정치인이 다수를 대신해 대신 싸워주는 업이라면,
문재인을 선택한 1470만 표는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다.
비통한 결과는 아쉽기 그지 없지만
점점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든다.
사람이 먼저라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이제 존재 자체로 희망이 되었다.
지난 피티기간을 복기하기 싫다.
수년간 3일에 한번은 겪은 날들이었을 텐데.
투지와 열정도 마케팅 언어 같고
무력감과 초조함으로만 잔상들이 남아있다.
일하는 흔적을 남기며 일하기 싫고,
이것이 일이라 인지하기 싫으며,
나를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기 싫다.
전람회의 '첫사랑'으로 성탄절을 시작.
첫사랑과 예식장을 가서 첫사랑과 밥을 먹고
첫사랑과 손을 잡고 첫사랑과 길을 거닐다
첫사랑과 차를 타고 첫사랑과 돌아올 예정.
첫사랑과 하루를 보내고
첫사랑과 내일 아침 같이 눈을 뜰 예정.
소수자를 배척하는 이상,
교회는 결코 자신들이 왜 외면 받는지,
세력의 확장이 더뎌지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 소수자들을 차별대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이야기는
수십 년 들은 설교와 성경 안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선거결과에 이토록 마음이 동하는 성탄절은 처음.
하나의 거대한 별이 우리 곁을 지나갔고
그 별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작아졌던
또 하나의 별이 방금 다시 고갤 들었다.
하루가 모든 것을 바꿔놓을 줄 알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건 아직 아무것도 없다.
모두, 힘내요.
몸 담고 있는 분야를 설명하고
선택을 확신하는데 주저함은 없지만,
타자의 시선으로 의견이 다른 분들 또한 있겠지.
하지만 많은 분들이 그리 알 듯 '전문적 글쓰기'는
결코 폄하되어선 안 될 분야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있는 것도 물론.
카피 넘김.
이 일이 노동이냐 판타지의 실현을 위한
레벨업 과정이냐로 고민 한 적 있었다.
결론은 둘 다. 생존에 떠밀려
이전의 꿈과 다른 곳에서
다른 입장에 계신 분들과 비교하면. .
비교가 무슨 소용일까.
카피도, 노동이다.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생계의 수단.
밤일 시작.
다시 말해 밤에 하는 회사일 시작.
조금 더 풀면,
내일 회사 안 가기로 했으니까 (휴가)
내일 마치 참석하는 것 이상의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회의 자료 만드는 일 시작.
일단 트윗 켜놓고 시작;
뭘 믿고 뭘 경계해야 하나.
증오가 확산되고 있(는 기분이)다.
정체불명의 대상에게 감정이 소모되고
이틀이 멀다 하고 그건 팩트와 다르다 하고.
리트윗과 좋아요가 얼마나 헐거운 참여방식인지
이번 대선이 이미 증명한 듯.
'터치'로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상황을 보다 정확히 인식하고
문제를 제대로 제기해야
다른 이들에게 해결의 말미라도 잡히게 할 수 있을 텐데,
얕은 식견과 무관심, 냉소와 발뺌에 능숙한 난
종종 타자와 공감의 범위까지 재단하며
스스로가 피해 받지 않을 부분까지만
팔을 뻗는 것 같다.
부당함을 부당하다 말하고
그 부당함이 이전의 온전한 상황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시도들이
여전히 어렵고 두렵게 느껴진다면,
학습적으로라도 공정, 공평, 균형, 질서의
의미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민주주의는
밀실(SNS) 안에서의 속닥거림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베는. . . 그냥 놔두면 안되겠다.
이정도 수면 위로 이슈가 되었으면
이미 어떤 조치가 이뤄져야 했거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가.
애들 장난으로 넘기기엔
수위가 넘어도 너무 넘은 듯.
SKT 광고 좋다.
리얼과 이미지의 경계를
고민하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람에서 기술로, 다시 사람으로.
지인, 지인들(2, 30대) 주변 투표 안 했거나,
끌려가서 했던 이들의 공통된 증언.
"뽑을 사람 없다, 정치 관심 없다, 둘 다 별로다."
후천적 자발적 움직임 없이 강요식 학습만으로
문제인식과 설득이 어려운 부분인 듯.
변화가 눈으로 보이고 와 닿게 해야겠지.
영화를 포함한 최근 본 영상 중 가장 거대한 울림.
문재인 후보 한 사람를 넘어 이런 역사의식과 투지와 메시지로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우리편이라는 게 감동이다.
이번 선거, 도저히 질 수 없다.
실화. 방금 페이스북 드르륵 훑어 넘기면서
글과 이미지 보고 있었는데,
완전 초미인 사진 있어서 잠깐 멈칫.
다시 보니 아까 내가 올린 아내 사진이었음.
헐.
투표지 한장에 4, 500만원 값어치라니.
12월 19일 지난 후 투표 안 할 권리와 자유를 행사했다며
주섬주섬 트윗에 적는 분들이 줄었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기대와 관심 없었으니 잃을 것도
딱히 좋을 것도 없다는 투로 비아냥거리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타이타닉침몰100주기]시청 중.
제임스카메론과 학자들이 영화를
실제 사건과 철저하게 비교&검증 중.
매트릭스 박스세트에 실린
당대 철학자들의 매트릭스 토론과 맥락이 비슷한듯.
위대한 영화는 나이를 먹지 않는구나.
배우와 감독이 죽어도 영원히.
(뉴스를 봤다면)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품위를 지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가치를 소비한다는 부류들이
여전히 MCM을 들고 다닐지 모르겠네.
물론 MCM이 애초에 저런 브랜드였는지는 의문.
갠적으로 사주고 싶은 물건 리스트에 한번도 오른 적 없었다.
박근혜 후보 일가 사건 다룬
이번 나는꼼수다(봉주24회)를 들었다.
오늘따라 걷고 싶은 퇴근길이었고 견딜만한 추위였다.
두 명의 죽음, 방식, 정황, 증언, 의혹들.
매일 지나고 자주 걷는 길인데도
스치는 이들의 움직임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연애도 사람이 먼저긴 하지.
사람이 있어야 사랑을 하든 싸움을 하든 뭐 그럴 테니까.
투표를 해야 환호를 하든 비판을 하든 그럴 테니까.
이번 투표 했냐 안 했냐 수준은 남자들로 치면
현역을 다녀왔냐 안 다녀왔냐 쯤 될지도.
말이 통하냐 안 통하냐 이 정도랄까.
문성근의 문재인 후보 지원 연설.
노무현 대통령때도 한명숙 후보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더 감정을 뒤흔든다.
어떤 대선 후보에게 저토록 목이 터져라 외치며
모두의 염원, 모두의 희망, 모두의 지지를
열렬히 호소하는 연설가가 있을까.
이겨야 한다. 투표해야 한다.
눈은 선을 긋는다.
창 밖의 눈을 보며 일하는 사람들
/창 밖에서 눈을 맞으며 일하는 사람들.
눈을 보며 감상에 빠져
글을 쓰는 모든 행위가 경시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눈을 맞으며 일하는
모든 이들을 풍경의 일부로 바꾸는 것도 아니 될 일이다.
요즘은, 보인다.
조선일보는 정말 미친 것 같다.
아니 미쳤다. 니들 헤드라인 볼 때마다
내 카피가 어찌나 크리에이티브가 떨어지는지 부끄러울 지경이야.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체계를 지닌 글자로
어떻게 저런 만행을. . .
저걸 돈 주고 돈 받고 보는 애들은 대체.
#존재가악이다
이렇게 눈 많이 내리던 날 여자한테 고백했었다.
덮인 눈이 무릎 아래까지 푹푹 파이는 골목을 지나
눈덩이 뭉쳐 하트모양 만들어 선물했었다.
그녀 집 앞이었고 나오는 시간을 틈 타 거리에 글씨를 썼다.
12년 전이었다. 그때 그 여자 결혼했다.
나랑 같이 산다.
부모님은 평생 충남에서 농사 짓고 계신다.
어제 전화 드렸다. 누구한테 투표하실 거냐고 물으니
누가 되든 별 상관없으시단다. 아들로서 2번 부탁 드린다고 말씀드렸다.
"허허허 그려어 그러지 뭐어~" 이러신다.
"고맙습니다. "말이 절로 나왔다. 2표 추가했다.
과거 미 대선, 닉슨을 대상으로 케네디의 승리 비결은
단 한번의 TV토론회. TV매체시대에 부합하는
'지성과 패기, 깔끔한 이미지'로
상대적으로 누추하고 초췌해 '보인' 상대를 압도했다고.
박근혜 후보가 왜 TV토론을 그토록 회피했는지 짐작할만한 대목.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 전부터
광고회사의 이미지와 카피라이터의 이미지를 체화시켜
현실에도 그렇게 보이고 일하는 게 꿈이었다.
적어도 개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서 꿈은 현실이 되었다.
고마운 일. 개인의 철학에 부합하는 환경없이는 불가능했다.
오길비가 최초의 카피라이터는 아니지만
가장 알려진 카피라이터 중 하나라는 점에서,
마케팅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언젠가부터
컨텐츠라이터, 소셜라이터 등등으로 라이터를 쪼개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고 뭐라고 할까. 웃기지도 않는다.
카피가 호구짓도 아니고.
옥상달빛은 하드코어 인생아 Alive버전과 정규 1집도 좋지만
이것들을 찾아 듣고 CD구매하게 한 원동력은
라천 유희열시장 집권시절에 이룬 10CM와의 대결 라이브곡들임.
검색해서 모아 모아 다시 들어도 레전드임.
이렇게 살고있어, 두 사람, 백만송이장미 등 다수.
2013년 카피 준비 중.
2000년하고도 13년을 더 살게 될 줄이야.
1년이 3개월이면 더 열심히 살 텐데.
인간의 평균 수명은 400살일 텐데.
유치원 4년 초등 24년 중등
12년 고등 12년 대학 16년 다니고 취업은 120살, 결혼은 150살 정도.
오랫동안 대화하다 보면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범위를 짐작하게 된다.
나와 비교하고 연결하여 확장할 수 있는 부분과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는 부분들을 알게 된다.
도저히 그렇게 될 수 없는 부분들이
예민한 감정선과 자존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대화는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