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구원자
이번 명절은 금요일 밤부터 에피소드가 산이었다. 아들 캐릭터로 명절 퀘스트를 해치우는 건 능숙한 연기력으로 어떤 상황이든 대처 가능할 줄 알았고 지금껏 그래 왔다. 집단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하는 부분이 있는 법이니까. 에피소드가 도미노가 되어 지금껏 피로가 남아있다. 굳이 나쁜 기억을 소환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봉합이 당연한 절차고 그렇게 될 테니까. 번외로 조금 뭉클했던 순간은 할머니에게서 비롯되었다. 내 어릴 적이 담긴 사진들을 오래된 앨범에서 꺼내 주셨고 그중엔 젊고 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의 흑백사진도 있었다. 할머니. 여든이 넘은 그녀의 아가씨 적 사진이었다. 툭 건네며 갖고 있으라 하셨다. 수년 전 남편을 여의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있던 그 방에서 지난날을 수없이 추억했으리라. 기억되고 싶은 날 중의 한 장을 내게 준 것은, 준비 같았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날. 그녀는 내가 스스로의 상황과 관계를 제어할 수 없는 나이였을 적 닥친 결핍을 덮어주려 온몸과 영혼, 시간을 다해 헌신했다. 내가 아무리 망나니 멘탈로 바뀐 순간에도 단 한 줌의 원망도 가져가지 못했다. 손자를 위해 기도로 운 날이 자신을 위한 날보다 많았다. 그녀에게 난 늘 연민의 대상이었다. 데리고 다녔고, 자신의 쌈짓돈을 쥐어줬으며 도리와 예의를 강조했고 감사와 신의 의미를 가르쳤다. 그래서 남자 식구 중에선 유일하게 나만 교회와의 연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신에 대한 확신보다 할머니의 근심을 더하기 싫었으니까. 할머니에 대한 소회는 아무리 꺼내도 모자를 테다. 내가 기억하는 조각들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이자 헌신의 상징일 테니까. 그녀가 심어준 체온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 범죄의 씨앗을 키우며 살았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내 유년을 구원한 사람. 이렇듯, 그녀가 내 아버지를 뱃속에 품기도 전 사진을 건네준 것이 많은 생각을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 형제 중 둘째를 또 그의 아들을 가장 예뻐하셨다. 그런 그녀가 어제 내게 2세를 독촉했다. 2세의 2세의 2세라니. 어떤 시작도 끝도,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