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식

by 백승권

작정한 건 아니고 그렇게 되었어요.

작정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작정했으면 이렇게 될 수가 없죠.

뭔가 하려고 작정하는 순간

뭔가 되지 않게 하려고 모든 것들이

달려 들어서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작정했나 자책이 들기도 하니까.


몸과 마음이 경직되죠.

목표 설정이라는 게 주로 이런 식이죠.

뚜렷한 지향점이 생긴 이상

어색해질 수밖에 없어요.

모든 사소한 움직임들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무모함 보다는 머뭇거림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되고

새로운 시도 자체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정녕 맞나 같은

소모적인 생각에 빠지게 돼요.

이런 패턴은 결국 이런 패턴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이번엔 다를 거야 같이 의외의 결과를 기대하게 되고.


육체는 상자나 이동수단 같아요.

마음이든 감정이든 기분이든

무형의 개체가 담겨 있고 시작점이

뇌, 신경, 호르몬 뭐라고 부르든

결과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가시적 물리적 형태를 이루지 않아서

피부 근육 뼈 안쪽에 동그랗게

채워져 있는 것 같아요.

같아요 같아요 보이지 않으니

같아요 이런 표현으로 밖에 쓸 수 없고


근사하고 우아하게 표현하고 싶죠.

세계 문학과 시집을 뒤적거려

은유와 비유를 탈탈 털어와서 수놓으며


작정한 게 아니라서

작위적일 수 없어요 아니면

작정한 게 아니라서 더

작위적으로 보여도 할 수 없고


숙주라는 표현은 SF공포영화가 떠올라 징그럽고

컨트롤의 주체가 과거의 제가 아닌 것은 맞아요.

처음엔 제가 어떤 내부적 시스템 변화를 일으켜

적응기간이 이토록 오래 필요한 건가 싶었는데

차라리 새로운 경험 자극 감정의 융합체가 유입되어

지금 이 상태가 되었다고 여기는 편이 가장 설득력이

있지 않나 싶어요.


외부 전문가에게 분석과 결과 도출을 맡기면

맡겨진 대로 뭔가를 내놓긴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 경험과 지식, 정보 등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데이터를 대상으로

분석해야 할 텐데 그거 수집 및 전달하는 과정과

결과물이 객관성과 결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답과 대안이 없어요.

전신 & 마인드 스캐닝 정도의 과정이 필요할 텐데

이런 과정을 거친다 해도 외부 전문가의

관점 및 프레임을 전적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서 잘해도 참고 정도의 자료로 밖에

활용할 수 없다는 거죠.


제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정확성 높은 결과 도출은

스스로에게서 시도되어야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체 일부를 이식받으면

이식자의 기억이나 성향이

같이 이식된다는 말 있잖아요.


그런 거와 비슷한 게 아닐까요.

단순히 같이 있던 시간에

정비례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아얘 안구 이식 정도의 수준이라서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 아닌가 싶은 거죠.

이식해 준 사람이 나라는

또 다른 버전으로 복제된 것 같은.

새로운 내용의 메모리칩이 장착된 것 같은.


탈부착이 쉬울 리 없으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죠.


처음에 그랬잖아요.

작정했다면 이럴 수 없다고.

좋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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