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요 누구에게
말하는지 두리번거릴 수
없어요 들리지 않을 테니
들리지 않는 곳에서 자주 말했어요
들리는 곳에서도 이야기했었죠
우리 중 한 명이 기억을 잃는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 둘 다 기억을 잃고
우리 둘 다 우리 기억에서 지워지면
그건 그때는 없었던 일과 같아지겠죠
그런 날이 오지 않을 테지만
그런 날이 온 것처럼 살게 될까 봐
신의 플래너에도 없을 우려를
미리 해보고 마치 이런 걱정들로
비극의 어느 날을 미룰 수 있는 것처럼
이런 감정이 거대한 자력이라면
우리가 서로를 당기거나 밀고 있다면
각자의 먼 극점에서 서로의 지점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보내고 있다면
움직이게 하고 있다면
멀리서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건가요. 잘 몰라서 그래요.
우린 이대로 괜찮을까
언제까지 상상과 기대로
허상과 적막을 견딜 수 있을까요
괜찮지 않더라도 뭘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였었는데 지금도
우리는 우리지만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아닐 수도 있을까요
그럴 리 없겠죠 그건 알아요
슬픔은 연습이 없고
고립은 너무 실감 나서
우리는 손바닥을 붙인 채
태어나지 않았구나
기예르모 델토로가 스케치한
크리쳐 같은 상상을 하고
다시 덮어요 이런 글은
쏟은 커피 같은 거예요.
빨리 닦아내도 향이 남고
어딘가엔 얼룩이 지고
시간과 나이는 쌓이고
우리는 아주 조금씩 불과 재로 돌아가요
그전에 다시 만나요
시절은 끝나지 않았고
우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지금도 들리지 않겠죠
그래서 편지를 보내요
늦게 읽을수록 과거의 목소리겠지만
이미 늦은 게 너무 많아요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들도
다 해요. 그게 뭐든
다 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