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어쩌어찌 누구라고
정리하는 분들이 대단하고 신기해 보여요.
그래서 객관적인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쓰는 것은 차이가 클 것 같아서
한번 해보려 했고 아래는 그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일까요.
타인 객관화는 그렇게 신나는데
자기 객관화는 침묵이 인트로야.
저는 저인가요. 저는 성인인가요.
저는 남성인가요. 저는 성인 남성인가요.
이 네 가지 질문조차 답이 안 나와요.
글을 써요 매일 그건 맞아요.
직업이 있어요. 글을 쓰는 직업
글을 써서 돈을 벌어요 이것도 맞아요.
타인들과 엉켜서 짜증 나는 역사가
점철되어 있긴 한데 나도 그들의
짜증과 증오의 일부일 거라고
그게 내 요즘 내가 내 일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나는 문장에 내가 왜 이리 많을까요.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자의식이
본체가 된 것 같아요. 늘.
남성. 그래 몸은 남성이죠.
여성과 구분되는 남성.
외형적인 정의로는 남성이 맞아요.
나를 기록하는 수많은 공식 서류에 남성으로
표기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뿐입니다.
말투를 바꿔보니 다른 사람의 손으로 쓰는 기분.
그리고 성인 8X년생이니 성인이죠. X는 뭘까.
나이라는 수치로 정의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이렇게 내가 부끄럼이 많아요.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성인 남성
여기까지는 맞아요. 공공에서 드러낼 수 있는
객관적인 나. 그러면 이게 완료형의 나인가요.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아니 다른 문제 같은 관점 말고
그게 나냐고. 쓰다 보니 두 개의 (또는 세 개의)
자아가 말하고 있었구나. 맞긴 합니다.
그런데 왜 여지를 남기지. 그게 다가 아니니까요.
글 쓰는 성인 남성이 다가 아니라고? 아니긴 합니다.
아닌 건 아니지. 그래 부분이긴 해요. 전부는 아닌.
그걸로 다 정의되기 싫다는 거잖아요. 그런 셈이죠.
아무도 그 이상의 아니 그 이하의 정보조차
궁금해하지 않을 텐데 대체 왜
흐릿하게 지우려 드나요.
결국 타자에 대한 의식이겠죠. 나를 그저 그런
글 쓰는 성인 남성으로 이해시키고 싶지 않은 것.
그건 전부 다 우엑이니까. 왜. 맞잖아요. 우엑이잖아요.
글 쓰는 우엑. 성인 우엑. 남성 우엑. 우엑 우엑 우엑
자기부정이라기엔 세대 부정 집단 부정
일부 인식에 대한 부정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전시되고 싶지 않은 거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오해받는 게? 아니... 차라리 무명이 낫죠.
우엑 우엑 우엑으로 누군가의 이미지가
되고 싶지 않은 게 더 정확할 거예요.
그 이상은 없나요. 그래 '나'가 있었어요.
나는 나인가요.
적어도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성인 남성 = 100% 나가
아니라는 저항은 충분히 설명한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어떻게 나인가요. 그건 불가능해요.
나는 내가 아니니까. 객관적 데이터로 직업 성별 나이
이런 걸로 조립할 수는 있지만 나에 대해
내가 쓸 수 있는 정의는 자의식만큼이나 얽혀 있어요.
복잡한 진실 뭐 그런 거입니다. 진지한 척한다기엔
너무 오래 많이 자주 생각한 거라서 복잡한 게 맞아요.
그 복잡함이 지금까지 여기저기 전시한 문장들에
녹아있고 그걸 아무리 응축해서 가공한들
부피를 줄이면 줄일수록 진실과 다르게 보여요.
4천 개의 면을 가진 주사위에 적힌 하나의 숫자만으로
그 주사위의 경우의 수를 모조리 판단하기
어려운 것처럼. 별거 없는 데 복잡하고 복잡한데
복잡해. 그리고 이건 내가 보는 내가 그런 거지
각자의 렌즈와 데이터로 분석하려는 타인들에게는
또 다르게 해석될 것입니다. 결국 어떤 관점으로
해석되는 나이냐에 따라
너무 많은 나로 쓰일 수 있어요.
이 정도로 정리하나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결국 자기 객관화는 복잡한 우엑이군요.
어휴... 피곤해. 대체 이런 걸
왜 쓰고 있는 건지.
퇴고하다 보니
이유와 맥락과 얽힌 서사는
짧게 적기 어려울 정도로 파악이 안 되긴 하지만
제가 어떤 객관적 기준으로 정의되는 걸
격렬하게 거부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최소한의 문장으로
브랜드를 정의하는 직업을
10년 넘게 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토록 싫어할 수 있다니.
그만큼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서 그런 건지.
내가 문장으로 표현되었을 때 티끌만 한
긍정적 요소이라도 모조리 집어넣고
자랑하고 싶은 건지. 객관적 사회적 지위로
만인의 칭송과 불특정다수의 칭찬 댓글을
받는 분들이 어떤 면에서는 대단해 보여요.
타이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노력에 대한
감탄과 응원이겠죠.
객관화
명사
1. 자기에게 직접 관련되는 사항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생각하는 일.
2. 주관적인 것을 객관의 세계에 편입하는 일.
좁은 뜻으로는 경험을 조직ㆍ통일하여
보편타당성을 가진 지식을 만드는 과정을 이른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객관화라는 단어에 대한 기존의 보통 인식으로는
만인이 공통으로 인식하는 정의였는데
이게 아닌 결국 제삼자의 입장, 특정 기준과
프레임 안에서 정의되는 과정이 객관화라면
이건 제삼자의 주관화와 같은 의미 아닌가.
앞으로 누가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라고
말을 시작하면 "주관적으로 생각할 때..."라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모든 게 주관적인 거죠.
일부 협의와 동의 과정을 거쳤지만
완전히 깨끗한 투명함을 지닌 유리잔은 없겠죠.
결국 그 유리의 불순물과 지문,
공기 중에 묻은 먼지들이 섞인
오염된 투명함으로 유리잔 안의 물을
보고 있는 거겠죠.
그래서 망설였나 봐요.
얼룩으로 전부를 평가당할까 봐.
(어휴...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