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

마지막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생각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by 백승권

지금 사회에서의 삶에서 잠시 가출하고 싶다. 집과 집의 주변에서만 33일 정도 있다가 돌아갈 방향을 다시 정했으면 좋겠다. 머리에 든 게 없어서 갈피를 못 잡는지, 경험이 미천해서 나침반을 볼 줄 모르는 건지 노를 잡은 어깨가 부실한 건 사실이다. 뭐야 이게. 꿈도 기억나지 않는데 한 시간 전에 깨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탐색하고 있다니, 등 위에 짊어진 게 의무와 책임으로 부담을 느껴본 적은 지금도 별로 없는데. 이건 단순히 내가 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태연한 척 구는 것도 있겠지만 그게 더 처연해. 현자라고 칭송받는 고민의 조상들이 기껏 남긴 말들이라곤 니 인생이니 무슨 문제가 일어나든 네가 알아서 해라 정도니 이거 원 어쩌라고… 깊이와 너비를 측량할 기준도 모호하고 거의 모든 일은 망각으로 인해 난생처음 겪는 고난 대우를 받고 있는 중.


이게, 지금 떠다니는 심경의 혼란과 부유물들, 조각난 사체들이, 물리적 거취를 바꿔놓을지는 지금으로선 확언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언제 또 긍정의 불화살에 관통당할지 모를 일이고. 어디에 있든, 어디에 맞는 프레임이 장착될 거고 모든 건 지겹게 반복될 테니까. 어떤 사건이든 사전에 늘 무수한 신호들을 보내오지만, 완성도 있는 예고편을 영사기가 뿜어내듯 보여준 역사는 없으니까. 모든 기록은 가정이고 추측이며 상황 이전의 불안과 모호함을 옮겨놓은 것뿐일 테다. 이번이 좀 다르다면 어떤 경우의 수에도 무감각하다는 점.


잃는 게 사람일지, 떠날 게 공간일지, 지울 게 시간일지, 잊을 게 감정일지, 모르겠다. 모르는데 아무렇지 않다. 그저 지금으로선 괜찮다. 쓸쓸하다고 적을 정도로 쓸쓸하지도 갑갑함도, 답답함도 미미하다. 문이 열리기 전인데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와 정보가 매우 적다. 조금 예민하고, 이 예민함으로 쓸데없는 감정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게 좋은 거라면 초연할 수 있다는 점. 무지하고 둔해서 다행이다. 그냥 수동이 아닌 능동에 의해 거의 다 바뀌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아닌 실행의 영역이지만 작은 카페트라도 미리 깔렸으면 좋겠다.


P.S

지금 삶에 자족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들로 역사의 남은 면적이 가득 채워졌다면 어느 누가 기록에 의미를 두고 남기려 들었을까. 농도가 각기 다를 뿐, 모든 기록은 고통과 번뇌의 산물이고, 밤과 어둠이 주는 고립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는 시도일 수밖에. 생의 어떤 표면을 지나든 글과 말로 전해야 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게 표현한 자신의 세계관을 모두의 기준으로 바꿔놓은 이가 있으며, 이들에게 영향받아 '기록'을 검증된 행위로 받아들이고 순환, 반복시키는 이들이 있어 모든 기록은 허용되고 평가받는다.


이는 어쩌면, 기록이란 게 가장 정점의, 달리 말하면 한계에 내몰린 후에야 겨우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일지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불온하기까지 한 감정이 표현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몰아붙일 줄 자신은커녕 누구도 알려주지 못했을 테니까. 마지막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 생각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유언으로 말끔히 매듭지어지는 인생도 보고 들은 적 없었다. 다만 이렇게 이어갈 뿐이다. 노출하고 가장 먼저 자신에게 평가받으며 가장 먼저 부끄러움을 느끼며 가장 먼저 납득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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