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희망이 아니라 욕망

by Glenn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수일 후)


희망이 좋긴 한데

글로 쓰면 죄를 짓는 것 같아요

긍정, 희망, 이런 거 좋은 걸 왜 모르겠어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안 그래도 자살 넘친다는 시대에

누군가 간절히 필요하고

그걸 내가 할 수 있다면

의미와 가치에 동의하든 아니든

쓸 수 있어, 어쩌면 더 진지하고 유려하게

허황된 주장과 오만방자한 의견이 아니라

그동안의 커리어가 그래

그런데 그 맥락 안에서만

효율과 파급을 거론할 수 있어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심각하게 비틀려 보일 수 있고

개인의 진실이 아니라

다수의 상업적 목적이 가미된 글이란

보통 그렇게 합의되며 최종안이 나오거든요

그게 개인의 진심 어린 목소리처럼 들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매우 드물어요

다수의 희망이 겹칠 경우

그게 희망처럼 읽히거나 해석될 일은 정말 힘들고

그건 희망이 아니라 욕망이겠지

희망을 팔아서 돈의 흐름을 옮겨야 하니까

신경이 곤두서고 절차가 많고

결과물이 애매하고 칼끝이 뭉툭해져서

결국 익숙한 이미지로 도출되곤 합니다

이건 물론 좋다 나쁘다로 쉽게 나눌 일은 아니고

누군가는 그걸 읽고 행복한 시간을

구매하기도 하니까

그렇게 믿거나


이걸 이렇게 길게 쓸게 아니었는데

희망을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잖아요

희망을 개인적 기록으로

옮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글로 옮겨져 오픈되는 순간 희망이 굉장히

쉬워 보이거든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보여서

조금만 어떻게 하면 실현될 수 있을 거라 여겨지지

기분이 좋아지고 꿈을 꾸고 나도 뭔가 다른 내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현재를 다르게 해석하고 싶고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조금 더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여기게 되지

희망은 만인의 것이며 그중엔 나도 있고

나도 저걸 가질 자격이 있다고

저게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내 삶도 희망이 생기면서 지금과 다르게

더 좋아지고 높아지고 대단해지고

남들 다 가진 행복이란 것도 가질 수 있게 되고

좋은 것도 입고 먹고 사고 갖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시간, 하루, 인생, 미래 뭐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희망, 지금은 없고 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

엄청 대단해 보이진 않는데 잘 쥐어지지 않는 존재

그런 존재, 희망이라서


이걸 글로 압축해서 쓴다고

석탄이 다이아 되는 정도의 격변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게

그걸 기대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아니 누구보다도 최초 독자인 내가

나를 포함한 누구의 글에서든

어쭙잖은 희망 타령 같은 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거죠

희망과 행복에 겨워서가 아니라

이게 존재하는 것처럼 쓰고 있는 게

흉폭한 기만처럼 여겨지니까


희망이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게 아니라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한 의뢰받은 결과물이 아닌

개인적 기록에서조차 스스로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결이 다를 필요를 느끼지 않고

시도하고 싶지 않다는 것


오히려 절망과 절규가 가득한 텍스트에서

내가 보는 풍경보다 더 최악의 이미지를

수집하는 게 '효능감' 차원에서는

더 희망적일 수 있거든요


이런 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믿지 않는 것을 굳이 믿는 척 하기엔

읽는 사람을 위해서도 도리가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니면서

수도승이나 피리 부는 사나이를

흉내 낼 일은 앞으로도 없고


모든 해석을 열어둔 채

여러 자아가 하나의 펜을

서로 빼앗아가며 조각낸 글을

투옥된 자가 벽에 그린 체스판처럼

울퉁불퉁한 선으로 옮기고 있는 거죠


불안하고 불길하고

모호하고 상스러워도

가품이 아닌 이게 더

원본에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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