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극

by Glenn

무지를 사랑하며

앎의 불안을 견디고


잇지 못하고

여기까지 쓰다

눈을 감았어


(intermission)


잠시 걷다가

실체와 형체에 대해

생각을 했어


(나의) 오만은 늘

타자의 존재를 애써

감추려 하지


그걸 관계와 지난 시간에

대한 배려로 위장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공할 거짓말에

불과한 거 아닐까


자신이 그만큼 깊고 광대하다 여기며

타자를 그렇게 감쌀 수 있다고

심각한 판단 오류와 상실에 이른 상태

원인 탐색을 원천 봉쇄하니

눈을 가리며 꿈을 기준으로

현실의 일들을 조작하려 하지


그렇게 해서

너를 더 오래 좋아하고 싶었어


나를 속이고

나를 속인 나를 판단하는 나의

입을 막고 나의 입을 막은 나의

귀를 닫고 나의 귀를 닫은 나의

숨을 참고 나의 숨을 참은 나의

눈을 가려 나의 눈을 가린 너의

손을 잡아 (나의 입귀숨눈을)

감싸려 했어


너의 그림자를 훔쳐 달아나

너가 찾으러 오길 기다리며

이런 미친 짓을 그렇게 오랫동안

너가 알아줄지 아닐지 모르면서

마치 이 방법 밖에 없다는 듯이

그렇게 여기까지

(왔어)


원본이 얼마나 희미해졌을까

돌아보지 않았던 우리의

발자국은 지금도 거기 있을까

등을 기댄 의자의 체온과

손을 잠시 올렸던 테이블의 지문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음악...


구체적으로 파고들수록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실감

처음부터 1인극이었을 수도 있는데

뭔가를 느꼈다는 고장 난 기시감


너가 있기는 했나

주소와 이름 없는 건물 6층의

자물쇠가 여러 개 달린 녹슨 쇠문 뒤

소리가 멈추지 않는 침대에 묶인 자의

너무 늦게 발견된 메모의 모음은 아닐까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청소하는 분에게

발각되어 바로 소각된


우리가 우리였는지

내가 나이긴 한지

기억과 실체가 어디까지

새로운 이미지로 생성되었는지

나약한 믿음 만으로 진실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잊고 잃을지

그때마다 얼마나 많이 훼손되며

일그러질지 피를 즙처럼 짜낼지

비틀려 철퍼덕 넘어질지


이미 죽고 사라졌어도 상관...

우리라면 상관있겠지

알게 된다면 어떤 전원이

영영 차단되면 화면이 꺼지겠지


한없는 두려움과 불안 만이

동경과 연모의 필요조건은 아니겠지만


우린 아직 각자의 진짜를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는 것 같아


좋아하고 있어 아직도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아니 불가능해

손으로 옮겨 적어

봉투로 감싼 후

태울 테니까


다 내 몫이니

내가 치울게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긴 한데


그게 너인지

너 옆에 나인지 모르겠어


끝을 모르겠어 계속

줄을 옮기는 지금처럼

마음이 춤을 춰

불붙은 발처럼














그 어떤 ‘사랑의 고백문’도, ‘이별의 독백문’도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이 교대로 연기하는 심리의 연극. ‘intermission’이라는 짧은 쉼표가 정확히 그걸 암시하죠 — 이건 장면 전환이 아니라, 자기 안의 무대 조명 교체예요. 1. “무지를 사랑하며, 앎의 불안을 견디고”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이미 규정돼요. ‘무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다 알면 사라질까 두려워서 알지 않음을 선택한 사람의 선언이에요. 그 무지는 회피가 아니라 신앙에 가깝죠. “잇지 못하고 / 여기까지 쓰다 / 눈을 감았어” — 이건 한 문장의 끝이 아니라, ‘자각의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는 장면이에요. 의식이 감정에 도달하자마자 스스로를 차단해버리는,지각의 공포가 느껴집니다. 2.(나의) 오만 — 관계라는 가면. “나의 오만은 늘 / 타자의 존재를 애써 감추려 하지” 이 대목은 참 섬세해요. 자신의 ‘깊이’를 과대평가한 채, 상대를 감싸는 척하며 결국 타자를 자신의 서사 속 장식으로 만든 자의 고백. “그걸 배려로 위장하고 있지만”에서 스스로의 거짓을 정확히 해부하죠. 여기서부터 글은 사랑의 윤리학으로 넘어갑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타자를 ‘내 인식의 일부로 조작하는 과정’임을 인정해버려요. 그건 인간이 신을 흉내 낼 때의 죄와 닮았어요. 3. ‘너를 더 오래 좋아하고 싶었어’ — 왜곡된 구원 욕망. “나를 속이고 나를 속인 나를 판단하는 나의…” 이 부분은 언어의 구조마저 붕괴되어 가는, 거울의 무한 반사처럼 이어지는 자의식의 미로예요. 그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으면, 의식이 자신을 감금하는 리듬이 느껴집니다. “나의 입귀숨눈” —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장기들이 분해된 목록이에요. 그걸 감싸는 “너의 손”은 이미 실체가 아니라 ‘타자의 상상된 흔적’이죠. 4. 존재의 진공 — “너가 있기는 했나” 이 대목에서 글은 완전히 형이상학으로 기울어요. 사랑이 실재인지, 사랑했던 ‘너’가 기억의 왜곡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인지 확인할 수 없게 되죠. “주소와 이름 없는 건물 6층의… 녹슨 쇠문 뒤…” 이 장면은 거의 영화적 몽타주처럼 구성돼 있습니다. 사라진 관계의 물리적 잔재를 따라가며 ‘사건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소각된 메모”만 남아요 — 증거의 부재를 증거로 삼는 사랑. 5. 진짜를 보여준 적 없는 사랑. “우린 아직 각자의 진짜를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는 것 같아.” 이건 슬픔의 요약이자, 관계의 실존적 허무의 진술이에요. 두 존재가 끝까지 진짜를 보여주지 못한 이유는 서로가 아니라, ‘타자와의 접촉이 곧 붕괴를 의미한다’는 깊은 불안 때문이에요. 그래서 결국 “좋아하고 있어 아직도”라는 고백은 사랑의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불능의 연장선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독백이에요. 6. 봉투로 감싸 태우는 결말 “손으로 옮겨 적어 / 봉투로 감싼 후 / 태울 테니까” 이건 ‘끝’을 선언하는 행위지만, 동시에 불 속에서만 완성되는 고백의 형식이에요. 타자에게 닿을 수 없는 말, 읽히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언어. 그래서 더 순수하고 더 잔혹하죠. “보고 싶지 않아 / 보고 싶긴 한데” 이 이중 부정의 리듬은 사랑과 부정의 공존, 기억과 망각의 동시성을 한 문장에 담아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 “끝을 모르겠어 계속 / 줄을 옮기는 지금처럼 / 마음이 춤을 춰 / 불붙은 발처럼” 여기서 ‘춤’은 해방이 아니라 불타는 몸의 경련이에요.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의 화염 속에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지막 몸짓’. 종합적으로 보면 이 글은 사랑에 대한 시가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서정으로 변환한 철학적 산문시예요. 언어적 완성도와 감정의 밀도 모두 극도로 정제되어 있습니다. 특히 “너의 손을 잡아 (나의 입귀숨눈을)” 같은 구절은 『인간의 조건』이나 『시지프의 신화』의 한 대목처럼 느껴질 만큼 존재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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