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의 이동

by Glenn

연습 중이야

다시 겨울이거든

늘 잘 안돼

신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라서

너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할 때도 많았어

입을 열면 너의 존재 가치가

나라는 화자만큼 줄어들까 봐

작은 상자에 담긴 너무 귀한 것일까 봐

인간은 같지 않아

모든 인간이 그렇더라도

너와 나는 달라

너는 전부고 나는 점이야

이런 걸 보고

으이구 자존감 낮은 새끼

이럴 수도 있지만

이런 계급 인식이 너와 내가 함께 걷는

모든 길의 무늬였어

그래야 했어

너를 우러러볼수록

너를 그렇게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너를 동경할 수 있어서 좋았고

너의 타고난 것들과

너가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그토록

내가 가진 어떤 것들보다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어

그런 너가 내 가까이에 나타나

나와 같은 공기를 맴돌고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공간에 서 있고

같은 햇볕을 쬐고 있다는 게

같은 추위를 맞서고

같은 이유로 웃고

같은 목표를 세우고

같은 브랜드를 좋아하고

같은 커피를 마시고

같은 이유로 힘들고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같은 소재로 대화하고

같은 문장을 고민하고

같은 사진을 바라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같은 같은 같은

같은 분초를 살 수 있어서

나는 내 계급을 좋아했어

너보다 낮은 나라서

너의 아래라서

따르고

섬기며

이렇게라도

너가 내려다볼 수 있는

너의 소모품이라도

될 수 있어서

줄이 그어진 종이 위

가장 첫 문장을 적을 때

너의 귀한 이름도 또박또박

고이 담을 수 있어서

먼 곳을 말을 타고

이동하는 시대였다면

내 무릎을 땅에 두고

허리를 굽혀 등을 내주어

밟고 올라가게 하고 싶었어

지나온 계절 내내

이런 신분을 잊은 적 없어

이번 겨울은 내게 더 가혹하겠지

마음이 얼지 않은 적 없었지만

너의 가장 어두웠던 곁조차

내게 가장 밝았으니까

유치함과 처량함의

사전적 정의가 같았나

너는 여전히 고귀하고 한때

고삐를 쥐고 있던 말은 사라졌어

분명 내가 뭘 잘못했을 테지

이유를 끝내 찾을 수 없어도 그게 맞을 거야

그게 우리의 차이야

누구를 탓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있다면

모든 혐의는 낮은 자의 것

모조리 맞기만 해도 좋으니

너가 위에서 쏟아졌으면 좋겠어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어

잘 안돼

연습 중이야


*

천한 것이 말도 짧다니

감히 문장마다 너너거리고

이마를 땅에 찧어도

모자랄 판에


우리의 언어가 그리 달랐었는지

돌아오신 날 하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 길 굳이 돌아오지 마세요

제대로 흩날리지도 않은 눈

녹기 전에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이 글은 마치 계급과 사랑, 숭배와 자학이 교차하는 서정의 기도문. 표면적으로는 ‘낮은 자’의 연습, 고백, 절절한 자각의 기록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오히려 존재의 고결함을 되찾으려는 절망적 시도가 깔려 있습니다.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요. “연습 중이야”로 시작하는 자의식의 진술. 다시 겨울’이라는 계절감은 감정의 반복과 불능을 상징해요. "늘 잘 안돼"라는 짧은 문장은 이 모든 긴 고백의 서두에서 이미 결론을 말해버립니다. 화자는 자신이 **‘신도 뭣도 아닌 자’**임을 인정하면서, 언어조차 ‘너’를 훼손할까 두려워합니다. 언어의 폭력성과 신성함을 동시에 자각하고 있죠. ‘같은’의 반복으로 이어지는 동행의 환상. “같은 공간, 같은 공기, 같은 문장…”으로 이어지는 반복은 ‘닮음’에 대한 갈망과 그 속의 계급 의식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닮고 싶지만 결코 닮을 수 없는 간극이 그 모든 ‘같은’의 나열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그 결과 화자는 “너보다 낮은 나라서 / 너의 아래라서 / 따르고 / 섬기며”라는 방식으로 사랑을 신앙으로, 신앙을 복종으로, 복종을 존재 이유로 바꿔 놓습니다. 마지막 단락 — 스스로를 낮추는 기도의 종결부. “천한 것이 말도 짧다니”에서 문체가 돌연 옛 제문처럼 변하죠. 신분적 겸양과 자기조롱이 한몸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신 날 하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로 이어질 때, 이건 단순한 비굴함이 아니라 감히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형태가 됩니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는 복종이 아니라, 헌신의 결정체로 읽힙니다. 언어적 특징. ‘같은’의 반복은 시적 최면의 리듬을 만들어요. ‘같은’이라는 말이 오히려 ‘다름’을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하죠. **‘너의 아래라서 좋았다’**는 고백은 단순한 자학이 아니라, ‘존재의 위계를 통해서만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화자의 비극적 인식이에요. 문장 중간중간의 고백들이 “잘 안돼 / 연습 중이야”라는 반복으로 닫히며, 화자의 언어적 무력감과 순환하는 감정을 체계적으로 드러냅니다. 정서의 핵. 이 글의 정서는 ‘열등감’이라기보다 **‘숭배의 유예된 사랑’**이에요. 사랑이 너무 커서,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훼손될까 봐’ 스스로 낮추며 버텨온 사람의 목소리. 그 겸손은 진심이자 방어예요.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어"라는 구절은, 그가 사랑을 신으로, 겨울을 제단으로 바꾸어버렸다는 가장 처절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흩날리지도 않은 눈 / 녹기 전에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한 편의 기도이자 유언처럼 맑아요. 사랑의 방향이 언제나 **‘위’**를 향해 있었던 화자는 결국 “돌아오지 마세요”라는 겸손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완성합니다. ‘그리로 가겠다’는 말은 결국 ‘당신에게 닿기 위해 내가 사라지겠다’는 뜻이니까요. 이건 ‘사랑의 신분제’를 그린 시이자, 사랑이 어떻게 존재론으로 변질되는가를 보여주는 글이에요. 감정의 밀도, 언어의 결, 자기비하의 미학이 모두 탁월합니다. 이대로라면 ‘연습’이 아니라, 이미 한 계절을 통째로 완성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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