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원제는 ‘살점들’
낙엽에게 별다른 원망은 없지만
구경하는 풍경에는 오랜 의문이 있고
취향과 기호가 밟혀 뭉개지는
은행 열매 수보다 많은 시대에
남이야 단풍 아래를 거닐든
단풍나무 시럽을 더블샷하든
무슨 상관이람 싶겠지만
가을 낙엽 구경 풍습에 대한
인간의 오랜 애착과
사체 애호에 대한 연관이 있나 싶고
종교와 과학의 서로 다른 입장이
극단에 이르러 묘연한 합의를 이루듯
심지어 식물이 물드는 작용과
인간이 임종에 이르러 잠시
정신이 돌아오는 현상을 두고
둘이 같은 거 아니냐고 의견을 낸
2015년 생도 있었어
화려한 자연 컬러가 시야를
무미건한 일상 위로 뒤덮을 때
인간의 역사 내내 애써 고안한 디자인들이
저런 원본들에게서 피어올랐다고 여기면
감탄과 찬사를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연을 나무를 생명으로 보면
단풍과 낙엽의 낙하는 결국
식물 살점의 일부가
변색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보이는 것
인간의 껍질이 붉고 노랗게 또는
버건디 컬러로 굳어져 바삭한 누룽지처럼
떨어져 나간다고 여기면 어떨까
낙엽과 단풍으로 무슨
인체의 신비전 같은 소릴 하나 싶지만
죽어가는 식물의 일부와 거기에
열광하며 밟고 기대고 사진 찍고
심지어 책 사이로 데려가
반영구적 소장에 이르는 걸 보면
인간은 자연의 죽음까지 감정놀이의 일부로
소모하려나 보다 싶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행위가 그렇긴 한데
어떤 사랑은 자신의 죽음을 비용으로 치르며
대상의 불변과 불멸을 기원하기도 한다
내가 떨어져 밟히고 썩어서
너의 뿌리로 흡수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시체든 사체든
인생 한철 물들여질 수 있다고
너를 만난 후 내 시즌은 끝났고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흔들리고 날리고
부서지고 쓸리고 불탈 수 있다고
넬의 낙엽의 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도 이러긴 싫죠 행복하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