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거짓말의 시간

by Glenn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직시하며


건조해서 밟으면 바삭거리며

산산조각 날 정도로 인지하세요

상황을 아무리 예상한다고 해도

누적된 기억과 당시의 감각이

밧줄이 되어 너(나)를 조를 것입니다


수십 년 넘도록 반복된 일

공식 비공식 언급의 빈도와 볼륨이

다르게 여겨졌을 뿐 늘 있었어요

우리가 피와 세포와 점액질이었을 적에도

너를 모르는 숫자와 텍스트가

너를 더 적극적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어떤 영혼들은 성적표를 끌어안고

강물에 들어가고 옥상에서 내려왔지만

우리는 그런 결론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싶을 때


분리수거된 종이에 적힌 다정한 말들이

더 이상 읽히고 들리고 보이지 않을 때

내가 그렇게 대단하거나 강하지 않았구나

타인의 눈코입에 마이크를 쥐어주려 할 때


저는 한때는

먼저 실패한 자들이 떠난

빈 의자를 떠올렸어요


억겁의 고난을 들여

시간과 변수를 돌파해

자신을 드러낸 자들이

쓸쓸한 덕담과 함께 돌아갈 때


사력을 다했지만 다음 무대는 없을 때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을 들고 돌아설 때


인생은 허공 삽질의 연속인데

간혹 그 삽 위로 금 100돈 정도

쿵 떨어지면 좋겠구나

그동안 팔이 아팠으니까

지속가능한 삽질을 위해서라도

순금 삽으로 바꾸더라도


노력-실패-참담-수긍-반복

무수한 사이사이에 어떤 유혹에 엮이든

이 경계 안에서 맴돌았어요


그런데 수달 전부터

슈퍼마리오 게임 몇 가지를 하고

그중 하나는 기어이 엔딩을 보는 과정에서

동료 플레이어와 모든 플레이 시간을 함께했는데

지겨울 때가 많았어요


현란한 그래픽과 가벼운 모션

귀엽고 산뜻한 음악, 아이템 획득의 기쁨과

스테이지 클리어의 성취감까지

하지만 30분 넘도록 20회 정도 연속으로

캐릭터가 죽다 보면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이 피폐해지며 집어던지고 싶고

박차고 일어나 이가 부서지도록

얼음을 삼키거나 비명을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고

그 정도까지 가면 이미 인간은 아닙니다


그만하자 게임은 즐거워야 하는데

나는 즐겁지 않아 그만해

나중에 다음에 해 오늘은 그만해

하지만 나의 동료의 눈빛은 반짝거려요

포기하지 않아요

수년동안 넷플릭스의 닌자고와 포켓몬은

"포기하지 않아"를 가르쳐줬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의 동료 플레이어는

아랑곳없이 플레이를 멈추지 않아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없다는 듯이


그리고 마침내 염원하던 클리어에 다다랐을 때

험난한 용암굴을 지나 깃발로 점프하게 되거나

천지분간 못하던 쿠파의 아들내미를 죽였을 때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서태웅과 강백호처럼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를 끌어안습니다


일과 공부가 아무리 고생길을 지난 들

이런 희열로 이를 확률은 너무 드물어요

인생은 게임과 조금 많이 다르니까


플레이를 포기할지 인생을 포기할지

공부를 포기할지 일을 포기할지


선택과 결정은 이미

먼 과거에서 끝났을지도 모르고


다만 슈퍼마리오 게임을 떠올리면

그렇게 중간 그만두고 싶었는데

일단 클리어할 때는 잠시 좋았어요

잠시 강렬하게 좋았던 기분이

흉터처럼 박히면 다시 합니다


자살 시도보다 지속가능한 실패가 낫겠지

타인의 방향을 대신 안내해 줄 수는 없지만

이따금 최규석 작가의 송곳에서 읽었던

"시시한 그냥 인간, 시시한 약자"라는 표현을 떠올려요


모두가 버섯을 먹고 커질 순 없고

모두가 깃발 위로 단숨에 점프하고

모두가 게임을 클리어할 수는 없고


당장 전원을 끄지 않아도 플레이는 언젠가 끝나요

자꾸 죽다 보면 조금 늦게 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같이 가는 사람이 날 살려주기도 해요

더 좋은 건 내가 그를 살릴 수도 있다는 점이고

계속 같이 플레이하며

곧 끝난다는 거짓말을 함께 믿으며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