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감정

by Glenn

제목에 가을이 들어간 노래를 12월에 들으며

날이 어둡고 시린 바람이 뺨을 갈기며 지날수록

움츠러드는 몸은 떨림을 슬픔으로 입력한다

추위를 부정적 감정으로 해석해버리고 나면

기분과 정신은 익숙한 것이 또 왔다는 식으로

슬픔 고통 우울 삭막 좌절 체념 절망 등의

기억니은디귿리을같은 단어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출력한다, 자 여기, 어서 가져가


여기까지 지켜보던 제4의 자아가 휘청거리며 웃는다

또 또 저래? 와 무슨 겨울이 우울 창고야?

슬픔의 재고가 왜 이리 넘쳐, 소진될 시간도 없이

계속 쌓이면 언제 밝고 맑고 명랑한 것들이

들어오겠냐고 숨이 멎을 때까지 겨울만 겪을 셈인가

적당히 하고 빛을 받아들여, 색안경은 그만 좀 벗어


필터를 습관처럼 씌우다 보면 원본의 색을 망각한다

필터가 오리지널이 된다, 원본은 촌스러운 것이 된다

본능적으로 슬픔으로 겹으로 싸서 그 안에 들어가고

흐린 눈으로 바깥을 보며 느리게 움직이고

흐린 풍경을 묘사하며 세계의 전부로 서술하고

한때는 이렇게 보호했어 나를

파괴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뭐라도 욱여넣으며 공백을 채워야 했었어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었어

껍질과 덩어리를 계속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맹이 대신 질소를 채워 넣은 과자봉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무렇지 않게 되어서

자주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고

갑자기 시선을 아무 데나 고정시키며

일시 정지 같은 순간에 자주 빠지고


그때와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어요

과거에 어땠는지 기억하지 않으며

기억하지 않아도 벽지처럼 둘러싸여 있어서

과거를 현재처럼 누비고 있는지

과거에 그대로 박제된 건지


누구 탓은 아니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이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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