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지 않았으면
잘못하지 않았겠지
같은 전제는 잠시 멈추고
목덜미에 얼음 한 조각을 두고
등줄기로 흐르는 얼음물에 전율하듯
의식을 뒤흔들어 깨우고
감기는 눈을 위로 당긴 후
반성문의 원재료 같은 리스트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1월, 1월, 1월, 2월, 2월, 2...
이후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아요
여름도 있었을 텐데
2월의 냉기가 12월까지 같이 왔어요
가져왔는지 따라왔는지
끌려왔는지 제자리였는지
다른 관점으로 분석하는 게 두려워요
저급한 수준의 평가를 받게 될까 봐
새 자아에 새 견장과 명찰을 달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고초를 당하듯
기억나지 않는 죄까지
사무적인 어휘를 동원해 털어놓을 수 있을까
잘못 살아서 죄송합니다
부족한 능력에 염치도 없이 뭘 위해서 치열했는지
순간에 집중했지만 결과가 무엇인지
욕설의 가치가 있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는지
증명, 입증, 검증, 뭐든 그게 뭐든 떳떳했는지
너라는 나에게 나라는 너에게
부끄럽지 않았는지 그게 중요하겠죠
싸움을 피한 적 없고 군중에 숨은 적 없으나
그 이상이 필요했는지 너는 늘 너였는지
복기하다 보니 여전하군요
철저한 자기 합리화로 애처로울 정도로
아랑곳없이 남아있게 되었군요
도망치지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는 게
결코 잘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대안을 실행하지 못했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필요 없어요
이 말이 떠오르면 뜨거워지는 볼을 감싸요
붉어지는 눈을 감아요
스스로를 가엾이 여길 시간에
다른 뭐라도 했으면 나았을까
당당하지만 당당해서 뭐 하나 싶고
비 올 때마다 소리 나는 와이퍼처럼
당연한 지위에서 너무 시끄럽고
숨을 쉬고 있는 것만이 겨우 전부라면
식물과 뭐가 다를까, 식물은 새 산소라도 만들지
이렇게 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자극을 감각하는 신경을 절제한 것처럼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아요 죄책감
타인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제정신 들 때마다 눈물 흘리던 사람처럼
올해 그렇게 뭘 잘못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처참하고 누추하게 죽지 않으려 노력했고
목표도 경쟁도 없이 이렇게
감은 눈과 숙인 몸으로 살아남은 걸
잘했다고 평가합니다
내년에도 살아있다면
이런 걸 쓰거나 다른 걸 쓰고 있겠죠
올해는 으스러지는 날들이 많았고
내년은 좀 더 밝게 웃고 싶어요
비아냥과 비웃음과 자조가 아닌
같이 웃고 싶어요
아무리 건조하게 평가해도
올해 정말 어려웠죠
내년은 싸우고 싶지 않아요
숨거나 도망치는 법을 배우거나
입이 없는 봉제인형처럼 살고 싶어요
같이 웃고 싶은 사람이 입을 그려주면
그때만 같이 웃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