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의도하고 독자는 착각하고
모든 글을 내면의 그늘진 점토로 덕지덕지 도배할 수 없다. 고통의 범벅을 보여줘 가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의 지난 고통과 어서 줄을 맞추고 공감과 감동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타라는 주문도 마찬가지다. 비슷하다는 말만큼 모순적인 말도 없다. 비슷하다는 주관적인 묘사에 다수의 동의를 얻었다는 뉴스를 더하면 비슷하다는 말은 권력이 된다. 그렇게 글은 사라지고 자극만 남는다. 내용은 사라지고 경험은 사라지고 아픔은 사라지고 '좋아요'와 '퍼가요'만 남는다. 난 이걸 느낀 거 같아, 넌 그렇지 않니. 이 글 안에 내가 보여, 넌 그렇지 않니 같은 수긍의 강요만 남는다. 피와 시간으로 새긴 무늬는 그렇게 소멸된다.
고통은 시기와 인물, 상황을 막론하고 같지 않기에 우리가 같은 글에서 같은 느낌을 받은 건 과거의 학습에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사건을 겪은 글이니 이런 감정을 불러오는구나. 하고 낯선 반응을 경험할 새로운 기회를 날려버린다. 그래서 어떤 책 읽기는 행위 자체로 대결이 된다. 쓰는 이만의 새로운 관점을 옮긴 글과 읽는 이의 학습된 인식 과정이 책장과 눈 사이에서 격돌한다. 이건 익숙해 이건 좀 달라 이건 과거에도 읽은 비슷한 내용 이건 새롭지만 놀랍지 않은 내용 독자는 판단하고 수용하고 반응한다. 감각의 컨디션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주입되는 내용도 있지만 그건 생에서 늘 놓치는 버스 같아서 뒷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 한들 앞줄과 이어지는 쾌감을 재현할 수 없다. 순수하게 연결된 고리를 만질 수 없다. 쓰는 이와 읽는 이가 대면하는 처음의 순간엔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고 이것들이 모아져 온전한 시간의 퍼즐을 채워 넣는다.
독서의 과정 중 지은이가 옮긴 고통의 흔적을 독자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동일시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몰이해와 착각이 일어난다. 이건 어쩌면 독서의 순기능이다. 활자를 응시하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만으로도 독자는 보이지 않는 천국과 현세의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는 황홀경과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과하게 부풀리며 나도 이 사람 아니 이 사람이 여기 적은 글과 거의 흡사한 순간들이 있었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그리고 그 교집합의 면접이 크면 클수록 갈채와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타인의 글로 소환된 나의 기억이 이토록 비장하며 어두운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소재가 될 줄이야. 작가는 의도하고 기대하고 독자는 착각하고 설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