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번의 100일

마음이 노화할까 봐

by 백승권

너는 어떤 여자일까. 49번의 100일을 기념하는 동안 너는 어떤 여자였을까. 내 기억과 감각의 총합으로 정의하기엔 개인의 관점일 뿐이라서, 아쉽다. 달처럼, 토성처럼 아무리 가까이 가도 보이지 않는 뒷면이 있다. 어떤 중력이 우릴 이렇게 붙여 놓았을까. 수많은 우연이 일치하고 완벽한 상황이 조성되고 흠결들에 눈을 가렸다 한들 우린 어떻게 이토록 서로의 세포와 심연 안으로 사상과 계획 안으로 미래와 감정 안으로 침투할 수 있었을까. 그 빗장과 결계를 어떻게 해체할 수 있었을까. 그 여운을 따스하게 유지하고 다시 부풀게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많이 통제할 수 있었을까. 우린 그저 꼭두각시는 아니었을까. 저항할 수도 없는 거대한 기운에 휘청거리며 서로를 서로에게 마찰시킬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속에서 희열과 쾌감과 고통과 슬픔에 중독되어 남은 시간도 이렇게 맡겨지길 바랐던 걸까. 이건 나의 상상력일까. 또 다른 나와 또 다른 너는 또 다른 이유로 같은 결과를 이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을 두려워했을까. 마음이 노화할까 봐 조바심이 들었을까. 상관없다. 단 한 번도 시간과 상식에 의해 스스로를 저평가할 기회를 아직 갖지 못했고, 영영 그럴 것이다. 단언할 정도의 무지조차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간절함과 두려움으로 남은 생을 낮은 시선과 굽은 등으로 보낼지라도. 여전히 눈코귀를 막고 곁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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