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서열은 어떻게 나뉘는가. 얼굴

연상호 감독. 얼굴

by Glenn

내가 뭐, 아름다운 거, 추한 거

그런 거 구분 못 할 거 같아?


내 팔자에 들어온 그 모멸감을

내 힘으로 밀어낸 거야



사랑받고 싶었다. 앞이 안 보인다고 공격받고 외모가 별로라고 공격받으며 사람답게 사랑받고 싶었다. 절박한 기본권에 대한 욕망이었다. 분노의 표출은 왜 늘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흐르나. 약한 자에서 더 약한 자로 흐르나.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족을 건사하겠다는 책임을 넘어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치욕을 자극할 때 임영규는 무너졌다


임영규는 정영희와 가정을 꾸렸지만 몰랐던 풍문 한마디에 모든 퍼즐을 뒤엎는다. 그래, 내가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날 좋아해 주는 여자를 만나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니. 나처럼 앞도 못 보고 평생 괴롭힘 당한 놈이 또다시 다수의 수작질에 놀아난 거지. 내 인생이 그랬지, 지금도 그렇고. 임영규는 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이 행복이 너무 낯설어서?


풍문에 오해를 입혀 단숨에 신념으로 굳힌다. 날 또 속여? 날 또 괴롭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더는 내려갈 수 없어. 임영규(권해효, 박정민)는 자기 대신 정영희를 집어던진다. 자신의 사회적 타살 대신 정영희를 분리시킨다. 그래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보다 약하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힐 자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적어도 정영희 만은 자신에게 그럴 수 없는 존재라고 은연중에 계급화를 시켰기 때문에. 임영규는 자신을 사랑한 아내 정영희를 기꺼이 포기하고 남성 중심의 사회적 인정과 생존을 선택한다.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적극적이고 당당한 선택이었다.


정영희라는 소수자는 그렇게 사회와 개인과 가족에게서 분리된 뼛조각이 된다. 정영희(신현빈)는 소수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낙인찍혔을 뿐. 쫓기든 살던 무리들은 늘 희생양을 찾았고 대상을 정하고 낙인을 찍어 기정사실화 시킨 후 자신들의 계급을 스스로 상향시키려 들었다. 낮은 자들에게 더 낮은 자가 생기는 쾌감은 폭력적으로 고단한 삶과 노동을 잠시나마 잊게 했을까. 분리된 정영희는 남은 자들의 편의에 따라 가공되어 회자되었다. 언급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과도 같았다. 피로와 독기에 찌든 인간들이 정영희의 얼굴에 욕을 하며 웃었고 그렇게 막대해도 되는 존재로 격하시킨 후 망각했다. 철저한 격리이자 집단 살인이었다.


임영규의 시각 장애가 정영희에 대한 임영규의 선택에 참작할 여지가 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시대가 아무리 달라졌어도 노동의 무게와 생존의 버거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정영희와 임영규가 죽거나 죽이고 있을까. 자본가가 예술에 한껏 취해 있는 동안 어째서 노동자들은 서로의 뼈를 부수고 있나. 강간과 살인의 후예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스스로 정의하게 된다. 무리는 개인의 불행과 도태만을 기대하고 쓰러지는 순간 추가 폭력을 통해 내팽개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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