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지만
광고인들은 자존감이 낮아지기 쉽다. 광고 비즈니스 자체가 자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는 이러한 압박을 감싸기 좋은 포장지로 쓰이지만 이건 마치 고물 휴대폰을 스마트라고 사기 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브랜드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남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시키는 방법을 매번 고민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이러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적용시키지 못한다. 싸우고 고집하고 무너진다. 반복되면 자학한다. 누구보다 특별했던 자신이 초라해지는 과정을 목격한다.
모든 일들이 그런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겪고 지켜보고 떠나고 시작했던 광고인들은 그러했다. 총명함은 희미해지고 꿈은 지웠으며 스스로를 낮은 계급으로 한정시켜 작금의 상황을 합리화했다. 외국 사례 보면 뭐하나 과정은 훔칠 수 없을 텐데.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인정하고 그래도 싸워보겠다 남은 이들이 변하지 않는 세계와 싸우고 있다. 자기 하나 구원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이름을 만방에 널리 알리고 구경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보겠다며. 불행한 사람들이 만드는 행복한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광고에 대한 신앙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흔히 광고가 엄청난 노동강도를 지닌 업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만 주변에 귀 기울이면 알게 된다. 광고업은 비교의 대상에 올랐을 때 더 오랜 시간 일할지언정 더 힘든 일은 아니라고. 더 오래 책상에 묶어 놓는 타사와 자사의 의사결정 과정이 있을 뿐. 밤을 밝히고 모두가 좀비가 될 만큼 극악한 환경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된다. 밤새는 일 한다고 어깨에 힘주는 시대는 끝났다. 자신을 동정하면서 위로를 얻는 것은,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따금 생각한다. 이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도 아니고, 새로운 것이 팔리는 일도 아니며, 새로운 것들이 환영받는 일도 아니지 않냐고. 그런 믿음에 지탱하며 자신을 다독이긴 쉽겠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익숙함과 반복에 돈을 쓰더라. 그걸 새것처럼 포장하긴 하지. 환상에서 벗어나는 시간과 자기 최면에 빠지는 시간의 교차가 적정한 선에서 이뤄질수록, 광고(일)는 오래 몸담고 즐기며 분투하고 싶은 매력적인 분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게 불가능하다면 자신도 팀도 팀원도 같은 색의 어둠에서 오랫동안 헤매게 될 것이다.
광고는 광고의 대상을 구할지언정 자신은 쓰레기통에 매번 집어넣고 있는 악순환을 당연하게 여기는 구조 속에서 좀 더 나은 개념으로 인식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만드는 이들에게 당면한 과제겠지. 앞선 이들의 한탄과 푸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나도 나지만 너희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