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의식

이런 상황은 진화가 없다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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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눈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만둔다.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사람들이 더 남았고 더 그만둔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마음을 줄 수 없다.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들에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적는다. 나는 적고 그들은 적는지 안 적는지 나는 모른다. 마지막이 언제일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면 만회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 유지해야 한다.

간격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흡착된 관계는 형성되기도 힘들뿐더러 필요한 경우도 많지 않다. 칼을 휘두를 때 다치지 않고, 음식을 나눌 때 가까이 갈 수 있을만한 거리만 지키면 된다. 시간은 웃겨서 매번 다르다. 처음엔 살기 위해 가까이했고 나중엔 살만해서 버렸다. 그 사이 노출된 것들, 그동안 쌓인 말들, 그동안 벗어난 행동들이 미열로 눈앞을 흐리게 하고 서로의 길을 방해했다. 놓아버리게 하고 거절하게 했다. 피하게 되었고 억지로 웃게 했다. 검둥 근처에서 검어지기 싫어 움츠리게 했다. 그렇게 됐다. 시간이 웃겼다.

처음과 달라질 줄 알았고 처음과 달라지게 되었으니까. 알면서도 인정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게, 인정하든 안 하든 살갗으로 겪게 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것들이 시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뭉치려 시도하며 평화를 위장할 때, 너희와 나는 불나방이 된다. 재가 된 날개로 추락한다. 과거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애써 추억하지도 않는다. 부끄러워서. 패기를 이어가지 못했던, 불의를 기꺼이 저질렀던, 희생하지 않았던, 피하지 않았던, 더 현명하지 못했던, 그래서 이렇게 망가진 현재가 부끄러워서. 다 타버린 몸을 가지고 떤다.

이런 상황은 진화가 없다. 무한반복될 것이다. 나중에도 이런 소회를 적으며 가능한 것들과 어쩔 수 없는 것들을 혼동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고통을 자기만의 동굴 안으로 끌고 들어와 기만의 울음소리를 내며 기만의 의식을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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