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셰리던 각본 & 연출. 랜드맨
마약 가득 실은 비행기가
유조 트럭을 친 건 뉴스도 아니죠
50만 달러 빚을 진 이혼한 알코올 중독자
이제 꿈꾸는 사람은 없어
도둑들과 바보들만 있지
여기서 사람 불에 타는 거 보는 게
마지막이 아니야
유전에 전력을 공급하려고 친환경 에너지를 써요?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거지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에요
사람이 죽는 거지 석유 회사는 죽지 않아
테일러 셰리던의 랜드맨은 이름 그대로다. 랜드맨의 모든 것을 담는다. 시리즈 영상으로 만들어진 수십 시간 분량의 장대한 경력 기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토미 노리스는 랜드맨으로 불린다. 석유회사 엠텍스의 현장 총괄 책임자. 광물권 확보, 토지 임대 협상, 분쟁 조정, 지역 이해관계 관리 등을 총괄한다. 엠텍스의 이익에 관련된 모든 것을 관리, 협의, 결정, 추진한다. 서부 텍사스 유전 지대의 현장 책임자의 업무는 텍스트로 요약하기 어렵다. 가스 누출을 막다가 손가락이 날아가는 건 농담 거리도 아니다. 마약 갱단에 끌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신없이 맞고 다리에 대못이 박히는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살해협박은 기본이다. 현장과 현장, 사람과 사람, 갈등과 갈등, 문제와 문제 사이 그 길고 끝없는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매일 같이 오간다. 극적인 감흥은 없다. 청년 시절이 얼마나 자극적이었을지 짐작하게 해 준다.
토미는 어떤 일을 겪어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극적인 감정표출이 없다. 말보로맨처럼 담배를 물고 매일 석유 시추 현장에서 죽음을 목격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눈앞에서 웃고 떠들고 농담하고 불평하던 석유 엔지니어들이 순식간의 폭발에 불에 타 죽고 허물어진 자재 더미에 깔려 죽는다. 그들이 죽으면 총책임자인 자신이 가서 유족들에게 전달한다. 평생 친구이자 보스(회사 대표)인 몬티(존 햄)에게 주요 사안을 시시각각 보고하고 논의한다. 놀랄 일은 없다. 그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협의하고 해결을 꾀한다. 몬티에 비하면 토미의 삶은 먼지로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토미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토미가 통찰에 능하고 진리를 깨달았다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알고 인생의 한계를 알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는 모든 순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토미는 현장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지만 자기 인생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가족은 이미 파괴되었다. 현장에 내내 머물러야 하는 업의 특성. 평생 싸우다 이혼한 아내는 재벌과 재혼하고 흔한 할머니가 되지 않으려고 성적 매력으로 휘감기 위해 전신과 영혼과 태도와 모든 것을 바친다. 딸도 마찬가지다. 둘은 원초적으로 인간적인 애정을 바라지만 외형적으로 섹스에 미친 인간들처럼 묘사된다. 아들은 대학 중퇴자다. 자라는 내내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본 자식이 멀쩡한 20대가 될 리 없다. 그는 아버지를 복사하겠다는 듯이 석유 시추 현장을 자원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자신도 거의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폭력에 시달린다. 지옥에서 자라 자기 의지로 도망쳤다고 여긴 곳도 지옥이었다. 토미를 주축으로 이들이 가족의 원형으로 복원될까. 불가능하다. 누구보다 토미가 그걸 제일 잘 알고 있다. 의무를 다할 뿐. 인간적으로 나약해질 때는 의지를 구할 뿐.
시즌2까지 진행된 랜드맨은 석유회사 자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납득이 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야를 압도하는 거대한 풍광과 횡으로 질주하며 가로지르는 장면들. 기이할 정도로 치밀한 구조라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는 시추 현장의 원경, 석유 시추 작업의 디테일, 일하는 사람들 (but 희망 없는 표정들)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는 서사 속에서 밀도 높게 편집되어 펼쳐진다. 토미(빌리 밥 손튼)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인생의 허망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단 한시도 져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왜 거기 있는지 알고 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뭘 기대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회사)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지 알고 있다. 영악하다기보다는 경험이 많고 무엇보다 피곤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쉬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죽도록 맞아도 다시 부츠를 신고 문밖으로 절뚝거리며 나갈 뿐이다. 야쿠자를 다큐처럼 연기하던 기타노 다케시가 겹치기도 한다. 불의의 사고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초연한 표정,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석유 회사는 죽지 않으니까. 그는 자본의 추악함에 인간미를 덧씌우기 위해 석유 회사의 홍보팀에서 만든 캐릭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