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탈출구

by 백승권

스마트 시대 최후의 탈출구, 집

_스마트함은 어느 곳에나 존재할 수 있지만 집이야말로 스마트의 성지다.


스마트 피로사회다.

마치 모두의 지향점처럼 수많은 미디어가 눈과 발이 오가는 곳을 점하고 있다. 마법의 단어. 사람이 맵시 좋은, 말쑥한, 옷 등이 깔끔한, 똑똑한, 영리한, 상류층의, 고급의, 움직임 등이 (힘 있고) 잽싼, 활기찬, 무기 따위의 장치가 컴퓨터로 조정되는 (그래서 영리하게 여겨지는) 등의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이와 비슷한 의미로 통용된다. 특히 나날이 새롭게 쏟아지는 IT기기의 등장으로 인해 ‘스마트’는 꺼지지 않는 동력을 얻었다. 기존의 기기들에 더 새롭고 다양한 성능과 더 작은 사이즈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활동들에 더 빠른 속도와 편의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생활과 인생으로 바꿔줄 거라고 호언하는 풍경들이 즐비하다. 아이폰의 등장이 미친 인류의 변화만 해도 수많은 책과 이미지로 보고되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지하철과 버스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 손에 들린 자신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획일화. 당신이 스스로를 스마트하다고 여긴다면 일단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과 비슷한 휴대폰을 들고 비슷한 목의 각도를 지닌 이들을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곳은 스마트 경계의 바깥이다. 도망쳐라.

더 똑똑하지도, 더 고급스럽지도, 더 활기차 보이지도 않는다. 스마트의 단어에 대한 집착이 아닌 스마트가 지닌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싶다면 모두가 복제인간처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진정한 스마트란 군중의 숲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스마트라는 마법의 정령을 찾아 머물러야 할 곳은 어디일까. 모든 곳에서 TV를 볼 수 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소개한다. 그곳은 바로 우리 모두 각자의, 집이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가장 개인적인 공간

집은 중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두 개의 세계를 구분한다. 집에 들어오기 전 우리는 특정한 목적을 지닌 장소나 단체에 주로 속해 있다. 집 또한 일정한 주소지를 지닌 채 행정구역의 범주 안에 속해 있지만 문이 닫히는 순간, 그런 것은 어쨌거나 괜찮다. 더 이상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어떤 소음이나 불쾌한 어깨의 부딪침과도 완전히 단절될 수 있다. 비로소 혼자되었다는, 행복한 고립감을 선물해주는 곳이 바로 집이다. 집 이외의 장소에서도 일정한 편안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여러 준비물이나 조건이 따르기 마련이다. 행여 친한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묵더라도 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나.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집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서의 궁극의 매력을 발산하고 한없이 끌어당긴다.

규율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가장 자유로운 공간

물론 집에도 최소한의 예의와 지켜야 할 것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집이 아닌 공간과 비교하자면 매우 소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머리가 헝클어져도, 옷깃이 흐트러져 있어도, 방안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거나, TV를 보며 박장대소를 해도 본능적으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며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집 안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당신의 그러한 행동을 아주 오랫동안 보아온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집 안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진공관 춤을 춘다고 해도 자넨 해고야 라고 통보하지 않을 것이다. 집 바깥에서 받아온 보이지 않는 억압과 규율이 집 안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자유로움, 집을 통해 당신의 내면과 외모는 자연인으로 바뀐다. 무명의 어떤 타인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몰입하는 공간

육체와 마음의 여유가 평행선을 이루는 순간, 집은 가장 자연스러운 집중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 회사 책상에서나 수다로 가득한 커피숍에서처럼 의도적인 몰입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 능률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바깥에서 처리했던 어떤 일보다 빠른 속도로 처리된다. 집에서 처리한 일과 조직 내에서 한 일의 결과를 비교해보면 결과는 자명해진다. 모든 분야의 업무가 다수의 합의를 통해 결정이 될 필요는 없다.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고도의 몰입감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들에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로운 기운이 듬뿍 묻어나 있다. 타인의 의견들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운 성과가 도드라지게 드러나 있다. 익숙함과 아늑함을 통해 생각의 범주는 광활해지고 일은 목표가 아닌 놀이가 되어 몰입하는 중에 사라져 버린다. 우리가 대부분 스마트하다고 부르는 것들에는 심플하다는 속성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가장 복잡한 과정을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도록 몰입할 수 있는 곳, 집은 태초부터 스마트한 성과를 내기 위한 장소였다.


새로운 생각을 실현으로 옮길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공간

우리는 외부에서 수많은 자극을 받는다. 감정의 상처가 될 때도 있고,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기도 하며, 이른바 영감(inspiration)이라고 불리는 창조적인 발상의 시초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순간이 지나면 휘발된다. 깊은 잔상으로 남더라도 구체화하고 형상화하기엔 외부엔 이미 수많은 변수로 가득하다. 집은 다르다. 집에서 상상은 시간을 확보하며 점점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외부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여러 요소를 제어해야 하느라 수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지만, 집에서는 소파 위에서 휘갈긴 메모를 컴퓨터를 열어 바로 그림으로 옮기고 배고프면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두뇌와 근육의 움직임을 늦추지 않을 수 있으며 한 번에 풀리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다잡을 기회를 열어놓는다. 피로는 샤워로 풀 수 있고, 답답하다면 잠시 음악을 듣거나 책을 펼치고, 게임을 해도 된다. 가장 안정된 분위기 안에서 가장 따뜻한 온도와 높은 밀도를 지닌 감성을 추출하고, 사소한 움직임과 작은 면적의 컬러까지 눈에 담아 가며 감각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 사소한 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적으로 옮겨갈 수 있다. 단순히 불을 끄고 이불만 덮고 자는 기능으로 집을 활용하고 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까지 수많은 혁신의 기회를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모르는 집의 잠재력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가장 스마트한 공간, 집

물론 지금까지 말한 이러한 부분들은 당신이 집의 많은 부분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을 때 유효하다. 적어도 원하는 시간에 불을 끌 수 있거나, 음악을 틀 수 있거나, 문단속을 하고 잘 수 있거나 정도의 자유로움만 있으면 충분하다. 자신의 공간을 자신의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전제 자체로 이미 스마트의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무분별한 작명과 마케팅 키워드가 스마트의 본래 의미를 해쳤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그중 가장 적극적인 감각과 지성, 생존본능을 지닌 인류의 편의를 위한 것만이 스마트의 본질이며 존재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빽빽한 군중 사이에서 자신의 스마트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유려한 디자인과 통제를 벗어난 초고성능, 할부가 두렵지 않은 가격대의 최신 IT기기를 뒤지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욕망을 억제시켜 소비를 만류할 필요까지 느끼지는 못한다. 다만 스마트는 SF영화나 광고 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도 당신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울리며 비밀번호 키를 누를 바로 그곳, 집이 진정 그대를 스마트하게 해줄 것이다.


editor's pick

영화_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

최근 10년의 기억을 통틀어봐도 거의 모든 영화에서 집은 불안요소였다.

재앙의 근원지였고, 나쁜 기억이 되살아나는 곳이었으며,

누군가 숨어있거나, 귀신이 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만은 달랐다.

그는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가족의 원형을 고스란히 복원하여 전달하면서도

세련됨을 유지했고 그 안에서 기적과 사랑이야기를 탄생시켰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075


음악_ 아델의 <Make You Feel My Love>

아델은 1년 내내 들어도 또는 이따금 들어도 회귀본능을 자극한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누군가의 품에 안긴 듯한,

또는 그 품으로 돌아간 듯한 아득함과 아늑함을 동시에 전해준다.

오래 머무르고 돌아가고 싶은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집이 담고 있는 따스한 이미지들과 맞닿아 있다.

2008년 음반 <19>에 수록되었다.

https://itunes.apple.com/us/album/19/id282374043


책_ 이충걸의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집은 흔히 엄마라는 캐릭터와 동일시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엔 엄마가 있거나 엄마는 집에 있다는

전통적인 역할 상으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혈육을 박제화시켰다.

지큐 코리아 편집장 이충걸은 이러한 편견을 단숨에 부숴버린다.

지금껏 대한민국 어떤 아들도 하지 않은 시도,

순백의 효심으로 다가가 엄마라는 여자를 막역한 친구, 쾌활한 소녀,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지성인으로 보이게 한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와 그녀가 사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데이트 장소로 그려진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88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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