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로맨티시스트

여유와 감성을 갈망하는 시대

by 백승권

디지털 로맨티시스트에 대하여

_여유와 감성을 갈망하는 시대, 스마트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의 특별한 감수성에 대하여.


사랑과 호의가 넘치는 시대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러브마크(인스타그램, 텀블러, 핀터레스트)를 받을 수 있고 좋아요(페이스북)라고 들을 수 있다. 기호화되어있지만 분석하면 우리는 매일 같이 셀 수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애정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불특정 다수의 관심이 주는 행복에 길들여지게 되면 사막에서 물을 찾듯 점점 더 갈구하게 된다. 목은 점점 더 타오르고 읽는 사람의 반응을 뻔하게 의식하는 자극적인 사진과 글귀를 업로드하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느끼는 만족감을 ‘감성적’이라고 해석하고, 얻어지는 유대감을 인간관계의 중요한 지위로 상향시킨다. 빈도가 유지된다면 상관없지만, 모든 거래가 그러하듯 디지털 환경에서 이뤄지는 기브 앤 테이크가 온전하고 정상적인 등식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성실하게 업로드를 한만큼 관심의 개수가 돌아오지 않고, 내가 관심을 표시한 만큼 상대방도 답글과 내 표현에 대한 관심으로 답해주지 않으면서, 견고하다 여겼던 세계는 점점 무너져 간다. 아기의 행복한 웃음과 맛있는 음식, 화려한 취미와 멋진 공간 만이 즐비한 세계에서 자신은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한 천애고아로 전락한다. 혼자만의 잔치는 그렇게 끝난다.

모든 사생활이 연결되고 공유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극심한 단절감을 느낀다.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소통 행위의 최종 목적지는 어떤 그림일까. 사람들은 끝내 자신의 모든 신체 부위와 지인들의 치부, 통장 계좌번호와 전 남자 친구와의 은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체 공개’하게 될 것이다.(이미 그러한 수순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존에 극단이라고 여겼던 소재들이 현재는 그 수위를 한참 넘어가며 무심하게 퍼지고 있고 처음엔 낯설고 불쾌했던 부분들에게도 점점 무감해지고 있다.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더 많이 노출하게 된다. 더 자극적이라고 생각되면 끝을 모르는 과장과 거짓말, 공격적인 언사까지 무릅쓰며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멈추지 못할 것이다.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다. 기술로 인해 사람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있어 더 면밀해졌다고 보고되는 디지털 생태계만의 탓도 아니다.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다.

데이터나 물리적인 양을 0과 1로 표현하는 디지털이 뒤덮기 전, 세상의 기준은 아날로그였다. 암호화되거나 축약된 방식이 아닌 직접 기록만으로 모든 소통과 정보가 처리되었다.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 아날로그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세상을 진행시키는 모든 방식의 통칭이었기에 촌스럽고 불편하다는 판단은 거론될 여지가 없었다. 당연했다. 과거로부터 서서히 이어져 내려온 하나의 보편적 기준이었기에. 이때까지 길들여진 인간들의 본성과 소통방식은 노아의 홍수가 세상을 다시 뒤덮지 않는 이상 바뀔 일이 만무했다. 직접 대화, 직접 그림, 직접 표현, 직접 구매, 직접 만남, 직접 확인 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변화구를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이 언젠가부터 굉장히 시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관계의 중요도를 나누며,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바뀐 건 사람의 피와 뼈, 뇌와 세포가 아닌 주변을 둘러싼 기술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와 자신의 변화를 구분할 만큼 현명하지 못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여겼고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려고 발버둥 쳤다. 새 휴대폰을 사고 새 앱을 다운로드하고 새 전자기기를 사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러지 않은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계급을 형성했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그 계급을 구분하는 명칭으로 지정했다.

자신을 디지털에 속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아날로그였던 과거를 쉽게 부정했다. 점점 본질이 아닌 외피에 기대게 되었고, 손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아날로그를 한때 잘 나갔던 왕년으로 부르며 추억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행태 또한 자신을 철저히 디지털에 속하게 하려는 자기기만적 태도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이 떨어져 나왔음에도 사람들은 낡은 것과 새 것으로 선을 그었고, 전자에 속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최신 업데이트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나이에 따른 세대를 구분하는데도 유용하게 작용하는 듯했다.

흔히 온라인으로 불리는 인터넷 중심의 환경 안에서 빨리 적응한 자들은 실제 오프라인 상에서 같은 지위와 명성을 보장받기 어려웠다.

이것은 열등감으로 작용했고 디지털 세대들은 혼란을 겪었다. “나는 디지털 환경 안에서 이토록 자유롭고 우월한데 이토록 친구가 많고 내 이야기를 좋아해 주고 공유하는 이들이 많은데 왜 오프라인에서는 날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거지? 디지털 안에서의 수많은 연결은 왜 전원을 끈 순간 사라지는 거지? 내 비참한 현실을 위로받고 싶은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인정받고 싶다고.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알아주는 세계가 분명히 있다고. 빨리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해야 해. 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같이 행복해질 거라고.” 일부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자신과 세계의 전복으로 인식한 이들이 겪는 혼란은 작지도 적지도 않았다. 표면으로 드러나고 아날로그에 대한 적대감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때 디지털 로맨티시스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아날로그의 지성과 감성으로 무장한 채 디지털 기술의 진보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이들이었다. 방향을 모르고 끌려 다니며 자신을 위장하던 세대들에게 디지털 로맨티시스트들은 중재자였고 현자였으며 길잡이였다. 미디어의 융단폭격에 휩쓸리지 않고, 모두가 동의하는 이슈에도 자신의 의견을 적확히 내세웠다. 그들이 작정하고 나섰다기보다 부화뇌동하던 디지털 시대의 군중들이 이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지위를 상향 조정해준 것처럼 보였다. 디지털 로맨티시스트들은 단순히 아날로그에서 위대한 성취를 거두고 그 명성을 바탕으로 디지털 환경에 안착한 이들이 아니었다. 마치 주성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시민 영웅 캐릭터처럼, 아날로그에서 자신의 철학을 견지하며 주체적 역할을 묵묵히 하던 이들이었고, 이러한 면이 개인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디지털 환경과 진한 시너지를 일으킨 셈이었다.

이들이 과거의 오피니언 리더와 다른 면이라면 애써 자신을 포장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을 희화하는데 거리낌 없으며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의견과 비판에 성실하고 능숙하게 대응했다. 굳이 상대적으로 높은 친구 수와 팔로워 수로 대변되지 않아도 그들의 가치는 디지털 상 안에서 독보적이었고 이런 면을 통해 아날로그 활동을 더욱 견고히 다지기도 했다. 떼어낼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디지털 세대가 놓치고 있던 인간 본연의 감성과 이성을 깨우고 있었다. 개개인이 개개인을 위로하고 포용하는 과정 속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새로운 질서가 언제 어떤 움직임으로 다시 도래할지 단언할 수 없지만 디지털 로맨티시스트들의 등장은 이러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보이고 결코 의도적인 가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많은 복제 캐릭터들을 양산했다.

당신이 바로 그 디지털 로맨티시스트는 아닌가?

매일 좋은 글과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SNS에 옮겨 퍼 나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디지털 로맨티시스트는 환경의 변화와 사람들의 위기 심리가 반영된 하나의 현상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 요소들이 견고해지면 질수록 디지털 로맨티시스트의 역할과 가치 또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이다. 누구를 따라 하고 싶다면 결코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추종자의 숫자로 말해질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 누구보다 초연하고 독립적이기에 가장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넘어 단 하나의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고 가장 독립적 지위로 올라서게 된다는 것을. 당신은 그러한가.


editor's pick

영화_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복선, 새로운 대사와 새로운 음악이 들린다.

상대의 생각으로 진입하기 위해

인셉션을 시도하는 장면은 디지털로 접속하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는 점까지도.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515


음악_ 한스 짐머의 <인셉션> OST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는 순간의

긴장감과 폭발력이 살아있다.

다크 나이트 OST에 있어 이토록 사로잡는 OST는 없었다.

https://itunes.apple.com/us/album/inception-music-from-motion/id380349905


책_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같은 장소에서 동시대를 지나면서도 서로 다른 기억을 남기곤 한다.

마치 디지털 상에서 회자되는 이야기의 공감대가 서로 다른 것처럼.

다자키는 과거 같이 다니던 친구들에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때의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미지로.

옳고 그름을 넘어 관계와 시간이 남기는 불가항력의 정서가 담겨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4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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