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에게. 추억의 마니

요네바야시 히로사마 감독. 추억의 마니

by Glenn

어떤 운명적 만남은 가장 낯선 곳에서 실현된다. 10대 소녀 안나와 마니의 만남이 그랬다. 안나는 보호자가 없었다. 친부모가 기억에 없었고 남은 기억은 어린 안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어른들이 다투는 모습이었다. 한집에서 딸처럼 챙겨주시는 아줌마는 친절했지만 안나는 그녀의 딸이 아니었고 아줌마는 안나의 엄마가 아니었다. 안나의 성장 환경처럼 안나의 몸상태 또한 온전치 않았다. 안나는 아팠고 방학 동안 아줌마의 지인의 동네에서 요양하기로 한다. 모든 게 낯선 곳이었지만 원래 살던 곳도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안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지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안나는 외로움이 여전히 적응이 어려웠다. 10대 초반이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까. 안나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다. 그게 꼭 엄마라는 이름표가 아니더라도.


이런 안나에게 마니는 기적이었다. 마치 안나를 위해 나타난 사람 같았다. 다정했고 따스했고 친근했고 어딘가 안나와 깊이 닮아 있었다. 안나는 마니에게 끌리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안나에게 처음이었다. 마니는 안나와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마니를 외롭지 않게 만들지는 않았다. 마니의 아빠는 밖에서 바쁘고 엄마는 마니를 거의 돌보지 않았다. 마니의 하녀들 역시 그런 마니를 함부로 대하고 괴롭히기도 했다. 안나와 마니는 서로에게 연민을 느꼈고 마니가 안나를 이끌고 안나는 마니가 이끄는 대로 같이 시간을 보냈다. 같이 있을 때 둘은 외롭지 않았다. 한 번도 지은 적 없는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안나는 마니가 좋았다. 이렇게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마니가 처음이라서.


하지만 둘은 영원할 수 없었다. 마니는 종종 사라졌고 안나는 정신이 들면 어딘가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둘을 연결해 준 공간인 마니의 거대한 집도 정체불명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오고 마니의 일기장이 발견되고 안나는 마니를 상상 속의 친구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니는 안나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안나의 삶 이전에 마니가 있었다. 마니가 있어 안나가 있을 수 있었다. 마니와 안나는 핏줄과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둘 사이의 애틋한 감정과 닮은 외모는 우연이 아니었다. 둘은 헤어졌지만 기억 속에서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안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안나에겐 마니가 있었다. 추억의 마니가. 안나와 마니가 서로를 바라보고 챙기고 헤어질 때 우는 모습이 아름답고 슬펐다. 어떤 기억은 슬픈 감정을 통해 영원으로 남는다. 무엇보다도 일상과 세계의 이방인으로서의 안나의 외로움이 절실히 와닿았다. 내게도 마니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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