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를까
미생 보다가 피 터져라 목 터져라 회의실에서 다른 파트 팀장과 의견 대립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수일 동안 끌어오던 영상 스토리 톤 앤 매너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취업 초년생들이 소재였으며 공감의 대상이었다. 내 의견의 주는 어설픈 힐링은 하지 말자였다. 보는 이(core target)의 가슴을 찢고 멘틀을 파멸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전 세대가 끄덕거릴 (보통의) 공익광고처럼 만들어선 안된다고. 가식 없이 절절하게 그려야 하고 그 충격을 통해 설득해야 한다고. 상대는 나와 달랐다. 각자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감정은 격해졌지만 인간이 아닌 의견의 대립이었다.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여러 가지를 써서 내밀었지만 수위가 높아 매번 걸렸다. 너무 침울한 정서울 담고 있다는 점이 꼬리로 밟혔다. 난 매번 따졌다. 이게 현실인데 왜 문제냐고. 그는 그런 현실을 영상과 이야기로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공된 희망으로 모두를 짧게 위안하는 게 그의 지향점이었다. 알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걸 쓸 수 없었다. 쓸 수 없는 걸 만들기 싫었다. 지금껏 날 움직인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도 안되지만 반응을 뻔히 예상하며 그저 그런 그림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어야 했다. 누군가에겐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아이디어는 결국, 소구 대상이 수정되면서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매번 부딪쳤다. 현장에 뒤늦게 투입된 어느 팀원은 오가는 고성 속에서 "지옥이 여기 있었네..." 라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었다. 내가 겪었던 시절과 현재의 다른 '나'들이 봤을 때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다시 되돌려도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났다. 기업들이 세상의 장그래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달하려 수많은 이야기들로 유혹하는 지금, 그 담당자들은 얼마나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까 하고. 진심을 담고 있는 걸까, 컨펌용 아이디어를 찍어내고 있는 걸까. 나는 얼마나 다를까 하고.
나는 다를까.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