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랑 일하기 힘들다
첫 회사 정리할 즈음 '(까칠해서) 쟤랑 일하기 힘들다'는 소릴 들었다. 두세 번째 회사 역시 종종 까칠하다는 소릴 들었다. 그때 그 회사들은 그때 그 사람들과 그곳에 있고, 나는 다른 곳으로 간다. 저런 말들이 업의 경로를 바꾼 적은 없었다. 찾는 길은 늘 멀리 있었다. 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갖지 못한 것들을 원하고 있었다. 운이 얼마나 작용했을까. 나비효과는 또 얼마나, 무엇이 누적되고 무엇은 또 얼마나 잃었을까. 고민의 농도는 어느 순간 상형 평준화되어, 이후 지루해졌고 어느 날 진도를 멈췄다. 옅게 잔존한 투지만을 동력 삼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치워 나가며, 그게 유일한 생의 증명 방식이라 여기며 꾸역꾸역 지내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개소리를 개소리로 받아치며 몇 달 몇 년 별을 세며 날을 새웠다. 목적지를 자문하고 어떤 답도 듣지 못한 채. 어디까지 가서 뭘 하게 될지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건, 안다 하여 바뀌지 않고 준비한다 하여 소용없기도 하거니와 모른다 하여 딱히 손해보지 않는다는 학습 탓이리라. 무지가 일정 지점에 다다르면서 어떤 상황이 와도 초연 해지는 게 가장 이롭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앞으로 더할 것이다. 더 고집부리고, 더 까칠하고, 더 소리 지르고, 더 싹수없으며, 더 이기적으로 방해물들을 대면하고 다루고 뒤흔들 것이다. 더 무식해져서 더 계산하지도 않고 더 아쉬울 것도 없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따질 것을 따져가며 그리 지낼 것이다.